이 대표는 "햇병아리 사장이 7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매일 써서 올린 그림책 소개 덕분인 것 같다"며 "스스로도 그림책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고,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들고 있는 책은 '봄이 가기 전에 읽으면 좋을 그림책'으로 꼽은 '꽃에 미친 김 군'(보림). /조인원 기자

회사 가지 말라며 붙잡는 아이 두고 출근한 날 결심했다. ‘퇴사하고 그림책방 차려야겠다.’

경기도 광주시 역동에 있는 그림책 전문 책방 ‘근근넝넝’ 이혜미(42) 대표는 “솔직히 말해서 그림책 관련 일을 오래 했거나, 그림책 매력에 푹 빠져 창업한 게 아니었다”고 했다. 갓 세 돌 지난 첫아이는 아침엔 회사 가지 말라며 엄마를 붙잡았다가, 저녁에 만나면 “저리 가”라고 발길질했다. 아이도 엄마도 불안정하던 시기, 늘 막연하게 퇴직하면 하고 싶었던 책방을 ‘지금 하면 왜 안 될까’ 생각했다.

“책방은 주로 출판계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이나 작가들이 많이 하지 않나. 그저 책 좋아하는 평범한 14년 차 직장인이었을 뿐 전문 분야랄 게 없는 나로선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아이에게 매일 읽어주던 그림책을 떠올렸다.”

그림책방을 차리기로 결심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책 공부를 시작했다. 관련 서적은 물론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강좌나 세미나를 틈만 나면 쫓아다녔다. “그림책을 그저 그림 많은 아이들 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신비한 책이 그림책이더라.”

'근근넝넝'은 곳곳에 책상과 의자를 두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조인원 기자

그래서 이 대표는 책방에 책을 진열하면서 굳이 연령을 나누지 않는다. “그림책은 각자 해석하는 대로 보는 게 정답이다. 자신의 경험, 지금 나의 감정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첫째와 여섯 살 둘째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서점집 아이들 특권으로, 매일 내가 읽고 좋았던 책 3권씩을 읽어준다. 그런데 나는 좋았는데 아이한테 반응이 별로인 책, 이제 마지막 입고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는 책이 다르더라. 아이들이 1차 검증단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서점 주 고객은 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생과 그 부모들이 50% 이상이지만, 그림책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유아교육을 전공한 사람들도 종종 찾는다. “아이들이 푹 빠져서 책을 읽을 때, ‘책 안 좋아한다’던 아이들이 이젠 집에 가기 싫다고 고집 피울 때 ‘이 공간에서 주고자 했던 의도들이 맞아가는구나’ 하며 안도한다.”

대부분 대형 서점 그림책 코너가 책을 읽지 못하도록 비닐 포장을 한 것과 달리, 근근넝넝은 모든 책을 열어두거나 샘플북을 따로 두고 있다. 아이들이 책 읽기 편하게 키 낮은 의자도 서점 곳곳에 두었다.

“아이들은 손이 야물지 않아 책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읽을 때 구기면서 넘기는 경우도 많다. 파손율이 심하니까 일반 서점에선 대부분 비닐로 포장을 해둔다. 이곳에서만큼이라도 책 표지만 보고 사는 게 아닌, 내용을 보고 맘껏 책 고르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2018년 11월 연 서점은 이제 7년 차. 오픈 3일 차부터 인스타그램에 매일 한 권씩 소개한 ‘오늘의 그림책’이 벌써 2272권을 넘어섰다. 그는 3000여 권 되는 책방 내 모든 그림책을 다 읽은 책방지기이기도 하다. “시아버님 돌아가셨을 때나 아이 응급실 갔을 때 빼고는 거의 매일 썼다.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것 말고 책방지기로서 서점에 대해 홍보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꾸준함으로라도 승부를 보자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2월엔 이런 책방지기의 소회를 담은 책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톰캣)’를 펴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큰 성공은 없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굴러왔다. ‘작은 눈덩이의 꿈’(시공주니어) 속 눈덩이처럼. (…) 큰 눈덩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구르기 시작했지만, 작은 눈덩이에게 구르는 건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주 큰 눈덩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계속 구를 수 있다면 좋겠다, 내 힘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책방 이름인 ‘근근넝넝’은 직접 만든 말이다. “서점 이름 지으려고 할 때, 아버님이 ‘네가 서점 하며 이루고 싶은 게 뭐야?’ 하고 물으시더라. ‘여기에 오는 아이들도 행복하지만, 그 부모도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니 ‘그런 말을 만들자’고 하셔서, ‘모두를 다 행복하게 한다’는 말을 근근넝넝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는 지금 근근넝넝하는 중이다.

근근넝넝의 PICK!

-어른들이 더 좋아한 그림책 ‘틈만 나면’(길벗어린이). 멋지고 높은 곳이 아니더라도 틈만 있다면 활짝 피어날 수 있단 민들레꽃이 주는 위로와 찬사가 담긴 책.

-모든 어린이에게 다 통한 책 ‘똥 나오기 100초 전!’(제제의 숲).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이란 주제를 100초라는 시간 제한을 두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부모와 아이 모두 만족시킨 책 ‘야옹이 수영 교실’(북스그라운드). 물이라면 질색인 고양이들이 배우는 생존 수영을 통해, ‘모험’을 앞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