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은 ‘나가고 들어오는 고비가 되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오며 ‘선택’이라는 한자어와 더불어 늘 마음속에 다짐하며 새겨둔 우리말이다.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중략)/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섧구나.’

1970년 고향을 떠나 서울서 입주 과외를 하던 가난한 대학생이 아이 교습을 마치고 문간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밤 시간. 주인집 안채로부터 앞마당을 건너 희미하게 들려오던 노랫말이다. TV가 귀하던 시절, 이웃집으로 원정 시청을 간 빈집에 좀도둑도 많이 끓었다는 일화마저 전해지는 일일연속극 ‘아씨’의 주제가다.

인생 나들이길의 첫 ‘들머리’였던 대학 시절, 가난은 이렇게 한 젊은이를 과외집 문간방에서 서러움 속으로 젖어들게 만들었다. 파란만장한 아씨의 삶에 미치진 못해도 나름 동분서주 달리기를 계속하면서, 졸업이라는 고개를 넘어 교직이라는 ‘나들목’의 신작로로 진입하게 되었다.

좌충과 우돌의 삼가 조심 주행에 이어, ‘학생들의 피를 뽑는 귀찮은 존재’인 ‘모기’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모기’가 아닌 ‘목이(穆彛)’, 즉 ‘화목하고 떳떳함’의 휴게소라고 우기기도 하면서 질풍과 노도의 악천후를 견뎠다. 만화방창의 양지쪽도 달려보다가, 이제는 ‘감사’라 써 있는 큰 광고 입간판 옆을 지나 ‘부끄러움’이라는 교통 안전 표지가 보이는 ‘퇴직’의 ‘나들목’으로 빠져 나오게 되었다.

입주 과외집에서 ‘아씨’ 노래를 들은 지 이제 꼭 50년. 반백년 세월이 지난 올해 늦가을 느닷없이 태풍이 불어 서재의 모기 망창이 다 망가져 버렸다. 방충망을 교체하면서 천상병의 시 ‘귀천’이 생각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집을 찾아보니 우연의 일치인가. ‘아씨’와 ‘귀천’은 1970년 같은 해에 태어난 띠 동갑이었다. 우연 속의 필연 깨닫기일까. 그날 다짐했다. ‘귀천’에 나오는 달관과 해탈의 ‘아름다운 소풍 나들목’으로 진입하진 못할지라도, 부끄러움은 깃들여 있을망정 ‘아름다운 노을 나들목’만은 꼭 찾아야겠다고.

‘나들목’은 ‘나가고 들어오는 고비가 되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오며 ‘선택’이라는 한자어와 더불어 늘 마음속에 다짐하며 새겨둔 우리말이다. 영어 번역인 ‘인터체인지’와는 그 정조(情調)의 결이 다르다. 나가고 들어오는 나들목 고비마다 내가 내린 선택의 집합체가 결국 나의 인생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