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 먹는 음식, 얼마나 알고 드시나요.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보내드립니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김성윤입니다. 어제는 아내가 아이들 먹으라고 김밥을 말더군요. 코로나 사태로 집에만
박혀 있는 아이들에게 소풍 기분이라도 내라면서 말이죠. 두 아들이 좋아하는 스팸과 달걀말이를 넣고 채소는
빼고 작게 말았습니다. 먹거리가 풍성하고 다양해졌지만 나들이 음식의 지존은 역시 김밥이 아닐까요. 소풍이나 야유회, 운동회 등 바깥활동이 많은 가을 특히 인기가 높지요. 조선일보DB 나들이 음식의 지존, 김밥 한민족이
김을 먹은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색이 쓴 ‘목은시고’에 말린 김을 일컫는 ‘해의(海衣)’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니까,
아무리 낮춰 잡아도 600년 전부터 김을 먹어온 셈입니다.
김은 해의 뿐 아니라 ‘짐’ ‘자태’ ‘청태’ ‘건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김에 밥을 싸먹은 지는 얼마나 됐을까요.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1819년)’에는 복을 싸먹는다는 의미의 ‘복쌈’을 ‘박점(縛占)’이라고 부르면서 김에 밥을 싸먹는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속으로
무엇을 넣은 요즘 같은 형태의 김밥 기록은 20세기 들어서야 나옵니다.
이처럼 근대 들어서야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 김초밥(노리마키·海苔巻き)이 김밥의 원조라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김밥에는 초를 섞지 않고 속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노리마키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게다가 우리 김밥은 밥에 초를 섞지 않고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 하는 반면, 일본
김초밥은 생선초밥(스시)과 마찬가지로 밥에 식초와 설탕을
섞지요.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일본 김초밥은 참치살·오이·단무지 등을 하나씩만 넣지만, 한국 김밥은 소고기·햄·단무지·시금치·게맛살 등 온갖 재료가 한꺼번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한
가지 음식의 맛을 극대화해 즐기는 일본인의 미감(味感)과
여러 다른 재료의 맛을 융합해 즐기는 한국인의 미감이 만들어낸 차이일 겁니다. 한국 김밥이 일본 김초밥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미감에 따라 발전한 김밥은 이제 노리마키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김밥은 1950년대 후반 소풍, 꽃구경, 기차 여행 등 나들이 음식으로 본격 등장합니다. 당시 김밥 속에는
왜무짠지, 박오가리, 시금치, 표고 등을 넣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흔히 ‘민찌’라고 부르는 간 소고기를 간장, 설탕 등으로 달콤짭짤하게 볶아 단무지, 시금치 등과 함께 김밥으로
말아주었습니다. 요즘 간 소고기는 보기 힘들고 소시지가 대세가 됐지만요. 볶거나 말기 번거로운 소고기보다 자르기만 하면 되는 소시지가 아무래도 간편하겠죠. 김밥용 김과 길이를 맞춰 가늘고 길게 성형한 김밥용 소시지가 1986년 출시되면서
자를 필요조차 없어진 소시지가 소고기를 밀어내고 김밥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김밥
체인점이 등장하면서 이제 김밥은 그나마 싸지도 않고 소풍 당일 아침 사 들고 가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엄마가 싸 주는 김밥을 먹으니 운이 좋은 편이죠. 충무김밥./조선일보DB 밥 따로 속 따로 '충무김밥' 통영 충무김밥은 김에 밥만 넣어 말고 반찬을 별도로 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형태의 김밥이죠. 참기름 바르지 않은 김으로 손가락 만하게 싼 밥에 깍두기와 오징어무침을 곁들여내지요. 충무김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한때 충무라고 불리던 경남 통영에서 고기 잡으러 나가는 어부 남편을 위해 아내가 김밥을 싸줬지만 쉬어서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밥과 속을 따로 담아주었단 거죠.
이걸 본 다른 어부 또는 어부의 아내들도 밥과 속을 따로 담은 김밥을 싸주면서 통영의 향토 음식이 됐다는 설이죠. 또 다른 설은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 승객을 상태로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이 많았는데, 따뜻한 남쪽 바다 날씨에 김밥이 자주 상하자 밥만 넣은 김밥과 반찬을 따로 팔았단 거죠. 이것이 인기를 얻으면서 통영의 명물이 됐다는 설입니다. 처음에는
주꾸미와 꼴뚜기, 홍합, 무김치를 대나무 꼬치에 끼워서 김밥과
함께 종이에 싸서 팔았는데 이후 주꾸미는 구하기 쉽고 도시 사람 입에 맞는 오징어로 대체됐다고 알려졌습니다. 충무김밥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계기는 1981년 여의도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입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계획한 눈가림용 행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 행사에서 당시 충무라 불리던 통영에서 올라온 어두이(魚斗伊) 할머니가 판 김밥이 매스컴을 소개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김밥은 본격적인 외식으로 등장합니다. 여러 브랜드의 프리미엄 김밥. 밥이 적고 다른 재료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조선일보DB 김밥 대중화 일등공신 '1000원 즉석 김밥' 충무김밥이 김밥을 외식으로
인식시켰다면 1000원 짜리 저가 김밥은 김밥 대중화를 불러왔습니다.
1995년 인천에서 유인철이라는 분이 ‘김밥천국’을 열었습니다. 김밥천국은 공장에서 가공한
재료를 납품 받는 대신 점포에서 직접 재료를 가공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하는 데 성공하면서 1줄에 1000원짜리 김밥을 탄생시켰습니다. 비슷한 시기 서울 대학로 ‘김가네
김밥’에서는 주문하면 바로 말아주는 ‘즉석 김밥’으로 가정식 김밥과 차별화합니다. 저렴하면서 든든하고
포장해 가져갈 수도 있는 ‘1000원 즉석 김밥’은 큰 인기를 끕니다.
이후 전국에 많은 김밥집이 ‘1000원 김밥’을 들고 나옵니다. 참고로 유인철씨는 프랜차이즈화를
위해 김밥천국에 대한 상표권을 신청하지만, 특허청은 ‘식별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당시는 인식이 그랬답니다. 그래서
전국에 수없이 많은 김밥천국은 모두 같은 업체에 속한 프랜차이즈점이 아닌, 여러 개의 김밥천국 프랜차이즈
업체에 소속돼 있습니다. 똑 같은 김밥천국이지만 집마다 맛과 가격이 다른 이유입니다. 저가 김밥은 중국산 김과 쌀,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 등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소비자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인건비와 식재료비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김밥집 주인 입장에서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고민을 하게 되죠. 이러한 고민에서 ‘프리미엄
김밥’이 탄생합니다. 2009년 부산 용호동에 문 연 ‘고봉민김밥’과
2010년 서울 압구정동 ‘리김밥’이 프리미엄 김밥의 모태로 여겨집니다. 일반 분식집을
운영하던 이은영씨가 김밥이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김밥 전문점을 오픈합니다. 가격을 배로 높이는 대신
식재료 품질을 높였죠. 살이 찐다며 밥을 꺼리는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잡고 밥은 줄이고 부재료를 늘려
속을 꽉 채웠지요. 2013년 떡볶이 프랜차이즈 죠스푸드에서 ‘바르다김선생’을 론칭합니다. 국산 참깨로 만든 참기름과 청정지역에서 생산한 김, 무항생제 달걀, 간척지 쌀 등 최고급 식재료로 만든 김밥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프리미엄 김밥 붐을 일으킵니다. 프리미엄 김밥은 분식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분식집이 김밥을 내세운 김밥 전문점으로 리뉴얼해 오픈했고, 기존 김밥 전문점들이 음식 품질과 컨셉트·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가맹점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삼각김밥./조선일보DB 김밥은 아니지만... '삼각김밥' 삼각김밥은 엄밀히 구분하면 김밥이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김밥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여기서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삼각김밥은 일본에서 시작됐습니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주먹밥(오니기리)을 즐겨 먹었습니다. 여러 형태가 있지만 납작하게 누른 듯한 삼각형 기둥 모양 주먹밥이 가장 대중적이죠. 이 주먹밥에 잡고 먹을 때 손에 들어붙지 않고 맛도 더 좋으라고 기름 바르지 않고 바삭하게 구운 김을 붙인 것이 삼각김밥의 원형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삼각김밥이 1980년대 빠르게 발전하던 편의점에서 대중적인 상품으로 자리잡습니다. 국내에는 1990년대까지 일부 백화점에서 판매되다가 1991년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음식인데다 가격도 비싸고 맛도 한국인 입에 맞지 않아 판매가 저조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편의점마다 가격을 내리고 품질을 개선하고 다양한 맛을 개발하면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보슬보슬'의 키토김밥(왼쪽)과 베이컨키토김밥./조선일보DB 밥 없는 김밥 '키토김밥' 쌀밥이 한 톨도 들어가지 않아도 김밥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키토제닉 김밥’이 그런 김밥입니다. 밥이 있어야 할 자리를 채운 건 노란 달걀지단. 키토제닉 김밥을
처음 유행시킨 곳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역 ‘보슬보슬’에서
판매하는 ‘키토김밥’은 김밥 한 줄당 무려 달걀 5알 분량의 지단으로 꽉 차 있습니다. 가늘게 채 썰어 넣은 덕분에
포슬포슬 보드랍게 씹히는 식감이 독특하죠. 보슬보슬 사장 이용훈씨는 “이전 다른 이름의 분식집을 할 때 김밥 주문하는
손님들이 ‘밥 양을 줄여달라’거나 ‘밥을 아예 빼고 말아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달걀 지단을 넣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하더군요. 키토는 ‘키토제닉 식단(ketogenic diet)’의 줄임말. “탄수화물 되도록 먹지 않는 게 키토제닉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였지요.” 이
곳 말고도 서울 낙성대역 ‘소풍가는날’, 신도림동 ‘앞산분식’, 여러 지점을 둔 프리미엄 김밥집 ‘마녀김밥’ 등이 밥을 아예 넣지 않거나 거의 없다시피 한 김밥을
선보이며 ‘키토김밥집’으로 손님을 모으고 있습니다. 키토제닉 식단은 밥·빵·국수 등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주는 식이요법을 말합니다.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상태를 키토시스(ketosis)라고 하는데, 여기서
키토제닉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저탄수화물·당질제한 식단도 기본적으로 탄수화물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키토제닉과 뿌리가 같지만, 키토제닉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탄수화물을 하루 20~40g 미만으로 제한하고, 근육 생성과 몸의 대사를 위해 단백질을 적정량 섭취하며, 연료로
쓸 에너지의 열량을 버터·올리브오일·생 들기름 등 건강한
지방으로 섭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키토시스 상태에서 섭취하는 지방은 모두 에너지로 쓰거나 배출하고, 모자라면 몸에 쌓인 체지방을 태워 보충하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연스레 체지방이 줄어들게 된다는 게
이 식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원리입니다. 키토제닉 식단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6년 MBC 다큐멘터리 ‘지방의 누명’이
방영되면서. 기름 많은 고기와 버터 등 동물성 포화지방을 마음껏 먹어도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살이 빠지고
건강해진다는, 그 동안의 상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죠. 물론 키토제닉은 아직 논란의 대상입니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에 2003년
여러 다이어트 실험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저탄수화물·고지방·고단백질(‘황제 다이어트’로
알려진 앳킨스 다이어트) 식단이 3개월과 6개월에서는 전통적인 다이어트보다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었으나, 1년이
지나자 차이가 없었습니다. 2009년 NEJM에 실린 보고서에는
과체중 성인 811명을 4그룹으로 나눠 키토제닉·저지방·고탄수화물 다이어트를 2년에
걸쳐 장기 진행한 실험이 소개됐습니다. 실험 결과는 열량을 제한하면 어떤 식사든 체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이어트 비결은 ‘비율’이 아니라 ‘총열량’이란
당연한 결론이었죠.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이 높아 전체 열량의 50~55%로 낮출 필요는 있지만, 전체 섭취 열량도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대부분 영양학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럼에도 키토제닉 식단은 확실하게 뿌리 내린 듯합니다. 보슬보슬 이용훈 대표는 “손님층이 20~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다이어트, 체중 관리에 관심 많은 젊은 여성들만 키토제닉 김밥을 찾지 않는단 거죠. 키토김밥은
키토제닉 식단이 얼마나 한국사회에 확산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죠. 김밥이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지 궁금합니다. 키토김밥 만드는 법은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키토 김밥 김밥용 김 1장, 달걀 5개, 베이컨
4줄, 마요네즈·소금·식용유 약간씩 (1줄
분량)
|
입력 2020.09.18. 09:50업데이트 2020.11.17. 18:09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