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명도 언감생심’이라던 예상을 깨고 천만영화에 등극한 ‘파묘’의 뒤에서 크게 웃은 이들이 있다. 제작사도 아닌데 ‘잘했다’는 격려를 잇따라 받고 있다. ‘파묘’에 10억원을 투자해 현재 수익률 100%를 넘긴 IBK기업은행 혁신금융그룹 산하의 문화콘텐츠금융부다. 은행권의 문화 콘텐츠 전담 부서로는 국내 최초이며 유일하다. 영화나 뮤지컬은 제작사가 영세한 경우가 많고, 배우의 일탈 등 인적 리스크가 높아 투자 선호도가 떨어진다. 기업은행은 이 분야를 개척해 쌓은 노하우로 영화 ‘명량’(2014)을 포함해 ‘신과함께 1·2′(2017·2018) ‘국제시장’(2014) 등 역대 천만영화 32편 중 11편을 미리 알아보고 투자했다. 2012년 부서 신설 때부터 일해온 강경모 문화콘텐츠금융부 팀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 이외 수익원을 확보하고, 국책은행으로서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별도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이 이제까지 투자한 영화는 총 129편으로, 직접 투자액은 692억원이다. 대출이나 펀드 등 간접투자를 합하면 7조원 이상이다. 투자한 천만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176.7%에 달한다. 최고 성공작은 ‘극한직업’(2019). 7억9000만원을 투자해 수익률 377%를 올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다. ‘기업은행의 선택을 보면 되는 영화가 보인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픽=정인성

기업은행의 영화 투자 성공 비결은 모든 정성적인 요소를 최대한 정량화한 객관적 자료에 기반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1단계에서 검토 대상을 결정하고 2단계에서 16가지 요소별로 점수를 매긴다. 1단계에선 4가지 항목을 통과해야 한다. 첫째, 중소기업이 제작에 참여하는가. 둘째, 정치적·종교적 요소가 들어있지는 않은가. 셋째, 배우나 감독이 미투·음주 운전·마약 등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없는가. 넷째, 외부 자문단도 추천했는가를 따진다. 대상작을 점수화하는 2단계에선 시나리오 배점이 25점으로 가장 높다. 또 내용·장르·관람 등급 등을 각 5점 만점으로 채점한다. 장르 점수는 최신 경향을 반영해 때에 따라 변경한다. 최근엔 범죄나 코미디가 점수가 높고 멜로가 낮다.

10여 년의 노하우가 돋보이는 부분은 최종 조정 단계에 있다. 감독이 60세 이상이면 10% 감점한다. 감독의 생각에 주위 사람들이 이견을 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30·40대 감독의 데뷔작이면 10% 가산점을 준다. 젊은 의욕으로 만들어 성공 가능성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 출연 배우나 감독이 직전에 3번 연속으로 흥행작을 만들었으면 10% 깎는다. 지나친 자신감 역시 위험 요소로 친다. 반대로 직전 작품이 폭망한 감독이면 10% 가산점이 부여된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작업할 확률이 높아진다. 배우나 감독·제작사가 혈연·지연·학연 등 특수 관계인 경우도 10% 감점한다. 이 같은 미세 조정 단계를 거쳐 최종 점수가 100점 만점에 65점 이상이 돼야 투자 대상으로 선정된다.

그래픽=정인성

강 팀장은 “되는 영화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에듀테인먼트적 요소”라고 했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뭔가 새롭게 알게 됐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콘텐츠가 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파묘’나 ‘관상’(2013)은 풍수지리나 관상에 대한 상식, 코미디 재난 영화 ‘엑시트’(2019)는 재난 상황에서의 탈출법을 알게 됐다는 만족감이 입소문을 퍼뜨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의 봄’도 역사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관객의 호응이 있었기에 흥행이 불붙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은행은 문화 콘텐츠 투자액을 작년 312억원에서 올해 400억원으로 늘렸다. 강 팀장은 “OTT 시장과 극장 시장은 따로 존재한다고 본다”며 “혼자 봤을 때 좋은 영화와 같이 봤을 때 좋은 영화는 다르기 때문에 같이 봤을 때 좋은 영화를 잘 만들면 극장 시장이 얼마든지 회복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