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에 괴팍하기로 소문난 부자 ‘아르강뜨’(권은혜·문예주)와 ‘제롱뜨’(김명기)는 각자의 자식들을 정략 결혼시키기로 약속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 사이 아르강뜨의 아들 ‘옥따브’(이호철)는 부모도 없는 가난한 처녀와, 제롱뜨의 아들 ‘레앙드르’(홍승균)는 춤추는 떠돌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양가 부모의 정략 결혼 약속을 알게 된 두 자식들은 “누군가 곤란할 때 언제나 멋지게 도와줄 사나이” ‘스카팽’(이중현)에게 도움을 청한다. 관객들은 이제 나쁜 부자는 혼내주고 예쁜 커플들의 사랑은 이어줄 스카팽의 대활약을 지켜보며 맘 놓고 웃을 일만 남았다.

꾀 많은 하인‘스카팽’(이중현·왼쪽)은 구두쇠 부자‘제롱뜨’(김명기)를 실컷 골려주고 젊은 연인들의 사랑도 이뤄준다. 부와 권위의 허망함을 통쾌하게 풍자하고, 마지막엔 모두 행복해지는 유쾌한 연극이다. /국립극단

우울증 걸릴 것 같은 세상 잠시 잊고 ‘깔깔깔’ 웃고 싶다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국립 극단 연극 ‘스카팽’(각색·연출 임도완)은 맞춤한 처방전이다. ‘프랑스 희극의 출발점’이라 평가받는 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가 쓴 원래 작품 제목은 ‘스카팽의 간계’. 몰리에르는 비극만을 예술로 대우하던 17세기, 풍자와 위트 넘치는 공연으로 연극사를 바꾸고 당대 사회를 뒤흔들었다. 영국에 올리비에상, 미국에 토니상이 있듯, 프랑스 공연계 최고 권위 상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딴 ‘몰리에르상’이다.

수백 년 전 프랑스 연극이 21세기 한국 관객을 어떻게 웃기겠나 생각한다면 큰 오산. ‘스카팽’을 비롯한 몰리에르 희극은 노래와 유희가 어우러진 이탈리아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 장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전형성 강한 인물, 과장된 표정과 몸짓, 단순하고 따라 하기 쉬운 대사와 노래 등 우리 악극이나 마당극과도 닮은 점이 많다.

프랑스 자크 르코크 국제 연극 마임 학교를 졸업한 임도완 연출가는 직접 ‘스카팽’을 각색했다. 광대 할리퀸 가면을 쓴 몰리에르를 직접 화자로 등장시키고, 지금 한국 사회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삽입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싶어 하는 젊은 연인들을 보며 ‘스카팽’(이중현)은 말한다. “아니 젊은 사람들이 무슨 자판기야? 애 낳으면 돈 준다는 게 말이 돼?” 꾀를 내 괴팍한 부자 주인들을 골려줄 때도 스카팽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너처럼 몽둥이가 무서워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아. 상사의 갑질에 맞서지 않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지!”

극중 대사처럼 “그럼에도 사랑은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묘약.” 턱없는 우연이 이어지지만 모두가 사랑을 이루고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임도완 연출가는 “시인과 광대가 하는 일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시원한 웃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 한바탕 웃고 가시길 권한다”고 했다. 공연은 11월 1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