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파더'에 아버지와 딸로 출연하는 실제 부녀 전무송, 전현아 배우. /김지호 기자

공중파와 케이블 TV에 명절 특선 영화가 사라졌다. 올 추석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신작들도 신통치 않다. 영화관에 걸린 신작 영화들도 그다지 땡기질 않는다. 그렇다면? 긴 연휴, 가족 관객을 기다리는 연극과 뮤지컬이 있다. 골라 보는 재미가 있는 추석 공연.

◇노배우 전무송 무대 투혼… 걸작 연극 ‘더 파더’

연극 '더 파더'의 무대에 함께 서는 배우 전무송 전현아 부녀는 연극을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라고 하며 영화와 다른 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인자하고 유쾌했던 아버지가 변해 간다. 툭툭 모진 말을 내뱉고, 간병인을 시계 도둑으로 몰더니, 딸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당사자인 아버지도 미칠 노릇. 분명히 방금 저기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니…. 게다가 지금 날 아버지라 부르는 저 낯선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무도 남의 일이라 말할 수 없게 된 치매의 문제는 겪는 이들에겐 두려움 그 자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더 파더(The Father)’가 내달 1일까지 이제 딱 사흘 남았다.

배우 부녀(父女) 전무송(81)과 전현아(52)는 악화되는 치매에도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 분투하는 아버지 ‘앙드레’와 그 아버지를 돌보는 딸 ‘안느’가 된다.

‘더 파더’는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오스카 남우 주연상을 받은 동명 영화(2020)로 널리 알려진 작품.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2014년작인 이 연극은 프랑스 몰리에르상,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등 세계 최고 권위 공연상을 휩쓸었다. 국내에선 2016년 국립극단이 박근형 주연의 ‘아버지’로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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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에 박보검… 뮤지컬 ‘렛미플라이’

뮤지컬 렛미플라이

배우 박보검이 군 제대 뒤 처음 대중과 만나는 작품으로 소극장 뮤지컬을 선택했다. 대학로 예스24 스테이지 1관에서 개막한 ‘렛미플라이’. 1, 2층 합쳐서 400석 정도 되는 소극장이다.

식품첨가제나 인공감미료 전혀 넣지 않은 유기농 눈꽃 빙수 같은 맛이 나는 뮤지컬. 새하얗고 달달하다. 올해 초 열린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미만 부문), 작곡상, 신인남우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노래도 좋고, 재치 있는 안무에 객석은 금세 폭소로 달아오른다. 이야기도 착하고 순진하다.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날아오른 1969년의 밤,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향해 한 발 다가서던 ‘남원’은 사랑하는 ‘정분’과 함께 있었다. 라디오로 달을 향해 발사된 로켓 소식을 들으며 미래를 약속했는데, 갑자기 달이 커지면서 두 사람을 덮쳐온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2020년. 뭔가 시간의 흐름이 꼬여 버렸다. 재단사 학교에 등록하고 서울로 가기로 해서, 기차역에서 정분이를 만나기로 했는데, 애타게 나를 기다릴 텐데. 어떻게든 1969년의 ‘정분’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1969년 과거와 2020년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이 뜻밖의 시간여행의 비밀을 풀어간다.

박보검은 대학로 실력파 배우 두 명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으로 주인공 ‘남원’ 역을 맡았다. 이 뮤지컬의 음악을 만든 민찬홍은 뮤지컬 ‘빨래’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 민 감독은 한 언론에 박보검의 노래에 대해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한 중저음이 강점인 배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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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키튼즈·바니걸스… 원조 K 걸그룹 추억 여행 뮤지컬 ‘시스터즈’

쇼 뮤지컬 '시스터즈'. /신시컴퍼니

모든 전설에는 기원이 있다. 지금 세계를 사로잡는 K팝 걸그룹들 이전,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원조 K걸그룹’이라 불러야 할 뛰어난 가수들이 있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쇼 뮤지컬 ‘시스터즈(SheStars!)’는 그 전설적 여성 그룹 여섯 팀의 이야기.

1930년대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조선악극단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이난영의 두 딸과 조카딸까지 세 명이 6·25 전쟁통에 시작해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전미 순회 공연을 했던 ‘김 시스터즈’ 이야기가 이어지고, 미8군 쇼단 보컬을 시작으로 60년대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이 된 ‘이 시스터즈’가 무대를 달군다. 이어 당대 최고의 미군 위문공연 ‘밥 호프 스페셜’에 출연하며 50년쯤 시대를 앞서간 무대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윤복희의 ‘코리안 키튼즈’, 부산 출신 쌍둥이 자매 고정숙·재숙의 ‘바니걸스’와 수녀가 되고 싶었던 포천 소녀 인순이의 ‘희자매’ 이야기가 이어진다.

젊은 뮤지컬 배우 10명이 다양한 조합으로 걸그룹 팀을 연기하며 당시의 사진과 음원,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이들의 무대를 재연한다. 오래전 히트곡과 이들이 커버한 올드 팝 명곡들을 빠른 전개와 빅밴드 편곡을 통해 경쾌하고 흥이 넘치는 현대적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공연은 11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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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 아름다움을 오롯이… 정통 창극 ‘심청가’

2018년 창극 '심청가' 초연 당시 도창(導唱)을 맡았던 안숙선 명창의 공연 모습. /국립창극단

어린나무 속살 같은 황색 톤의 세련되고 미니멀한 무대 위, 오롯이 우리 소리가 먼저 보이고 들린다. 국립창극단 ‘심청가’는 2018년 초연 때부터 ‘본질을 파고들자 오히려 더 힘 있고 새로워졌다’는 호평을 받았던 작품. 최근 창극은 올리는 작품마다 전석 매진 사례가 잇따르고 이름난 창작자들이 몰리며, 해외 공연에서도 주목받는 가장 뜨거운 공연 장르가 됐다.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웹툰까지 종횡무진 흡수하는 창극의 진화 속에,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심청가’의 가장 중요한 ‘눈대목’만 뽑아낸 이번 공연은 우리 소리의 뿌리를 단단히 하고 원형을 되짚어 돌아보는 의미가 크다.

공연은 10월 1일까지 서울 남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완창 판소리로 들으면 5시간이 넘게 걸릴 애조 띤 계면음색의 강산제 심청가를 오페라 아리아처럼 인상적인 ‘더늠’ 부분을 중심으로 약 130분 길이로 추렸다. 지금 달오름극장 무대는 심봉사 유태평양, 어린 심청 민은경의 슬픈 소리에 울다가, 뺑덕 어멈 조유하 등 젊은 소리꾼들의 해학에 배꼽 잡고 박수 치며 웃는 관객들의 환호성으로 떠들썩하다. 도창은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국립창극단 김금미 단원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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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야외공연…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은 할인 이벤트

야외 공연도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오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광장, 청계광장, 무교로 일대 곳곳에서 ‘서울거리예술축제 2023′을 연다. 축제 기간 호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해외 초청작을 포함해 34편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천하제일탈공작소와 프로젝트 날다의 탈춤과 음악, 대형 크레인을 활용한 공중 퍼포먼스를 결합한 ‘니나내나 니나노’부터 서커스, 인형극 등 장르도 다양하다.

이도 저도 내키지 않는다면 안방 1열에서 공연의 감동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공연도 준비돼 있다. 예술의전당은 28일부터 30일까지 매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SAC 온 스크린’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saconscreen)에서 온라인 상영회를 연다. 연휴 첫날인 28일 음악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를 시작으로 29일에는 연극 ‘돌아온다’, 30일에는 발레 ‘라 바야데르’가 상연된다.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https://on.ntck.or.kr/Main/Index)에선 추석 깜짝 할인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스카팽’, ‘세인트 조앤’, ‘소년이 그랬다’ 세 편을 10월 3일 자정까지 정가(9900원)의 3분의 2로 할인한 6600원에 볼 수 있다. 여성 연출 부새롬이 여배우 이봉련을 여성 햄릿으로 기용해 재해석한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 고선웅 연출과 극단 마방진의 진면목을 보여줄 통절한 비극 ‘조씨고아’ 등은 모두 국립극단 화제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