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과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호흡을 맞췄다. 임윤찬의 피아노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마치 하나의 우주처럼 어우러졌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였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 은은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클래식팬들이 모여들었다. 45초만에 매진된 '얍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연주회'의 치열한 '피케팅(피+티케팅·피 튀기는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이들이었다.
공연시작 수십 분 전부터 로비에는 프로그램북을 사기 위해 구불구불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프로그램북과 티켓을 들고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움을 나눴다.
공연이 시작됐다. 서울시향 단원들이 먼저 무대를 채우고, 곧바로 얍 판 츠베덴과 임윤찬이 함께 들어왔다. 합창석까지 빼곡히 들어찬 객석에서 환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올해 스무살이 된 임윤찬은 더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 리본넥타이를 나부끼며 무대로 뛰어들어와 '귀엽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이날 까만 연미복, 하얀 나비넥타이 차림이었다. 특유의 더벅머리도 세련되게 정리했다. 그 사이 키도 조금 더 큰 듯 했다.
츠베덴은 춤추듯 유려했고, 노련했다. 임윤찬과 시향은 어우러지고 부딪히고, 폭발하며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그려냈다.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화음으로 시작한다. 이어 피아노의 분산화음과 트릴, 스케일이 질주한다.
임윤찬의 변화는 외모 뿐만이 아니었다. 현란하고 폭발적인 속주와 기교로 청중의 탄성을 자아냈던 소년은 깊고 차분한 해석과 여유있는 연주로 베토벤의 악상을 펼쳐보이는 청년연주자로 성장해 있었다. 때로는 속삭이는 듯, 때로는 소리치는 듯 연주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끌었다.
2악장은 녹턴풍의 느린 선율, 코랄 위에 펼쳐지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노래다. 피아노와 악단이 번갈아 서로를 반주하며 두 개의 변주를 펼친다.
3악장에서는 론도의 질주가 시작된다. 2악장에서 서정적인 선율로 숨도 쉬기 힘든 몰입을 선사했던 임윤찬은 3악장에서 음악을 한껏 즐겼다. 화려한 다이내믹 전환과 여유 있는 연주로 베토벤의 우주를 완성시켰다.
환호가 쏟아졌다. 임윤찬과 츠베덴이 손을 붙잡고 서로를 축하했다. 객석과 악단의 앙코르 요청에 임윤찬은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여' 쇼팽 편곡버전을 선물했다.
2부에서는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 연주됐다. 말러 교향곡 전곡 사이클 레코딩 도전에 나선 츠베덴과 시향의 첫 여정으로, 츠베덴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악단의 폭발적 기세가 빛났다. 관객들이 환호와 박수로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취임연주회를 축하하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도 자리했다. 얍 츠베덴 음악감독 취임연주회는 26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차례 더 진행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