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불암 배우. ‘한국인의 밥상’을 처음 시작하던 2011년 무렵 모습이다. 그가 14년여 진행해온 이 프로그램과 동행을 마무리지으면서, 내달 10일 700회 방송부터는 배우 최수종이 바통을 이어받는다./조선일보DB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85)이 약 14년 3개월간 출연한 KBS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과 동행을 마무리한다. 내달 10일 방송되는 700회부터 배우 최수종(63)이 ‘푸드멘터리(푸드+다큐멘터리)’ 성격인 이 프로그램의 해설자(프레젠터) 역할을 이어받는다.

2011년 1월 첫 방송을 시작한 뒤 최불암은 단순한 출연자가 아니라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는 26일 “최불암이 지켜온 ‘한국인의 밥상’은 단순한 음식 프로그램을 넘어, 한 끼 식사에 담긴 문화와 역사,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추억과 그리움을 담는 ‘맛의 기억 저장소’ 역할을 해왔다”며 “집안에서 밥상을 대물림하듯, 최불암이 물려준 따뜻한 밥상은 이제 최수종의 손에서 세대를 넘어 유산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불암은 26일 본지 통화에서 “정말 오래했다. 이제 좀 쉬고 후배에게 바통을 넘기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14년간 그는 매주 2~3일을 꼬박 이 프로그램 촬영에 투자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 대표 음식과 그 안에 깃든 삶의 지혜와 가족, 이웃의 온기를 전해왔다. 자부심도 애착도 컸다.

아쉬워서 어떻게 하시느냐 염려하자 그는 “정말 오래 했잖아” 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나이가 있으니 완전치는 않아도 건강 문제는 아니야. 새것도 못 찾으면서 뒤로 지나간 걸, 뭘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 있나 싶기도 했고.” 그는 “다행히 아끼는 후배 최수종이 ‘밥상’을 물려받았으니 마음 든든하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연극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했다. 그는 연극 무대에 대한 사랑이 누구보다도 깊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본지 인터뷰에서도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산길로 논길로 직접 걸으며 지방을 누비는 일은 그의 가장 즐거운 ‘운동 시간’이기도 했다. “초창기부터 같이했던 카메라맨은 ‘저~기부터 걸어오세요’ 한다니까. ‘아니, 나를 잡을라 그래?’ 투덜대는 척하지만 일부러 날 운동시키려고 그러는 걸 알지. 고맙지 뭐.”

그는 과거 ‘한국인의 밥상’ 이야기를 할 때면 갈수록 누가 더 선정적인 싸움과 갈등을 담을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드라마와 예능이 늘어나는 걸 에둘러 아쉬워하기도 했었다. “시골에 가면 어르신들이 물으셔. ‘거, 최 형이 나오는 드라마 이제 안 나오오?’ 하시는 거야.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는 평화로웠거든. 가족의 우애,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손주는 손주답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거기 있었거든. TV라는 게 삶의 칠판 같아야 해. 좋은 방송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애.”

‘한국인의 밥상’을 위해 지방을 다니면 곳곳에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마을 아이들을 위해 낸 길이 있다는 얘길 들려준 적도 있다. “무주 구천동에 갔는데 달구지 하나 다닐 정도의 소로(小路)가 있어. 길이 참 예쁘다 했더니 명패가 ‘학교 가는 길’이야. 연필을 조각해 꽂아놨더라고. 일제강점기부터 애들 학교 보내려고,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삽 들고 곡괭이 들고 바위를 V 자로 해서 뚫은 거야.” 그는 “그게 참으로 가슴에 멍이 들도록 아프더라”고도 했다. “그런 길이 충북에도 있고 경상도에도 있어. 어른이 하는 일은 그거지, 다음 세대를 위해 길을 내주는 거.”

‘한국인의 밥상’ 제작진은 “최불암 선생님은 지난 14년간 매주 음식 속에 담긴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전달해 주셨다. 그분의 헌신과 열정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 마무리짓는 게 은퇴는 아니다”라며 또 웃었다. “세월과 건강이 받쳐주면 좋은 무대 한번 만들어볼게. 기다려 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