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뒤 57년 만에 연극상을 받습니다. 다시 무대에 서길 잘했구나 싶고, 내가 우리 현대 연극의 흐름에 몸담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나는 듯해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재공연 개막(5월 9일)을 앞둔 연습실에서 만났을 때, 제35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자인 배우 박근형(85)은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활짝 웃었다. 그에겐 이해랑(1916~1989) 선생과 함께한 기억이 여전히 선명해 더 특별한 상이다.
“극단 ‘사조’에서 ‘리어왕’(1983)을 올릴 때 선생께서 연출을 맡아 지도하셨어요. 감히 말도 못 붙일 큰어른이셨습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 감정의 억제를 주문하셨지요. 이해랑 선생께 ‘절제’를 배웠다면, 일본 유학 시절부터 선생과 함께 활동한 연출가 이진순(1916~1984) 선생께는 국립극단 시절에 강력한 역동성을 배웠어요.” 박근형은 “그 두 가지가 지금도 내 연기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라고 했다.
연극과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전북 정읍에서 자란 그는 서울로 유학을 떠나 휘문고를 다녔다. “의사가 돼 차 사고로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를 고쳐 드리고 싶었는데, 임영웅 선배님이 오셔서 전국 고교 경연 대회에 나갈 휘문고 연극반 연출을 맡아주신 거예요. 공부 대신 연극에 빠져들었지요.”
오랜 무명 배우 시절을 보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집에서 명동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까지 걸어 다니며 연극 할 땐 굶기도 다반사였다. “1963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만선’을 공연할 때 동네 청년 ‘성삼’ 역을 했어요. 하루는 낮 공연 뒤 무대 위로 불려나갔더니 김승호, 최무룡, 문정숙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객석에 앉아 계셨어요. 김승호 선생이 절 끌어안고 뽀뽀를 해주시더군요. ‘이 자식, 이거 배우 되겠어!’ 이제 내가 배우해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1964년 국립극단에 입단해 단원 배우로 활동했다. 생활고, 낙향, 탤런트 활동의 우여곡절을 통과하던 중,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1977)가 흥행하며 일약 스타의 길이 열렸다. “한 주에 드라마 5개를 촬영할 때도 있었어요. 대종상도 몇 번 받았고요.”
방송에서 ‘회장님 전문 배우’로 높은 인기를 누리던 그가 본격적으로 연극에 복귀한 건 2016년 국립극단의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2023년 ‘세일즈맨의 죽음’에 이어 지난해 신구(89) 배우와 호흡을 맞춘 ‘고도를 기다리며’는 유례없는 전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먼 길을 돌아, 연극을 향한 그의 진심이 마침내 관객과 통한 것이다.
그는 “연극은 내 생명과 같다. 환영을 좇아 자리를 옮겨 다녔지만, 이제 정말 있어야 할 곳에 돌아왔으니 온 힘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했다. 기다리던 고도는 이번엔 정말 올까. 박근형이 웃었다. “기다려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