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사찰과 성당의 설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코로나가 바꿔놓은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올해 사찰과 성당의 설 합동 차례와 위령미사 풍경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설엔 합동 차례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도 방역 때문에 여러 규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도 모이지 말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한국 불교 1번지’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주요 사찰과 성당은 올해도 차례와 위령미사를 드린다고 하네요. 하지만 예년과 달리 풍경은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사찰과 성당에서 설에 차례를 드리는 일은 2010년대 들어 크게 확산됐습니다. 가정에서 직접 제수를 마련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과정이 여러 갈등을 불러일으키면서 종교 기관에서 엄숙하고 정중하게 지내는 차례가 관심을 끈 것이지요. 또 명절 연휴에 가족 단위 해외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더욱 확산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차례상에 진설할 음식을 주문하는 추세가 늘고, 국내 혹은 해외 여행지에서 인터넷으로 차례를 드리는 일이 늘어나던 그 무렵부터입니다. 이 때문에 사찰과 성당의 차례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왔습니다. 조계사, 봉은사, 진관사 등 명절 차례에 인기가 높은 사찰도 부상했지요. 제가 5년 전인 2016년 취재했을 때 조계사에 설 차례를 신청한 경우는 900가정을 넘었습니다.
5년 사이 꾸준히 신청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올해도 소폭이지만 조계사에 설 차례를 신청한 케이스는 1000가정이 넘는다고 합니다. 다만 조계사의 경우, 과거엔 500명 정도가 한꺼번에 대웅전에 모여서 합동차례를 지냈다면 올해는 대웅전엔 한꺼번엔 40명으로 제한을 한다고 합니다. 대웅전 안에서는 각각 2미터씩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가 차례대로 차(茶)를 올리고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앞의 사람이 차례를 마치고 나오면 뒤에서 줄 서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는 식이랍니다. 조계사는 설 당일(2월 12일) 오전 8시, 11시, 오후 1시 등 3차례에 걸쳐 대웅전에서 합동차례를 모신답니다. 이 중 오전 8시 타임이 가장 인기가 높다네요. 580여 가구가 신청했다고 합니다. 또 달라진 풍경은 과거엔 차례를 지내고 나오면 사찰에서 떡국을 대접했는데 올해는 이게 어렵지요. 대신 조계사는 마스크를 5장씩 드리기로 했답니다.
서울 강남 봉은사는 어떨까요? 대웅전 외에는 모일 전각이 별로 없는 조계사와 달리 봉은사는 여러 전각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각각의 전각엔 미리 신청한 가정들이 ‘단독 차례’를 드리고, 공간이 넓은 법왕루에선 합동 차례를 드렸지요. 이 전통은 올해도 이어진다고 합니다. 다만 방역 지침에 따라 변화가 있습니다. 12일 오전 8시, 10시, 오후 2시 등 3차례에 걸쳐 법왕루에서 합동차례를 드리는데, 올해는 신청하는 불자(佛子)가 줄었다고 합니다. 단독차례의 경우, 2019년 150건에서 186건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올해는 다시 150건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합동차례도 4370여건(2019년)에서 4990여건(2020년)으로 늘다가 올해는 4100여건으로 줄었답니다. 봉은사도 합동차례 땐 법왕루에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은 50인 이내로 제한합니다.
서울 은평구 진관사는 사찰 내에 방앗간까지 갖추고 직접 가래떡을 뽑는 사찰이지요. 매년 스님과 봉사자들이 가래떡 400㎏, 만두 1000개를 준비하는 사찰입니다. ‘사찰음식명가’ 답지요. 합동차례에 참여하는 불자들도 200가정씩 됐지요. 진관사 역시 올해도 합동차례를 올린다고 합니다. 12일 오전 5시, 7시, 10시 등 3차례 합동차례를 지내는데 함월당 법당 안에는 4인씩만 입장하도록 한답니다. 대웅전과 명부전, 나한전, 향적당 등에서 가족 단위로 모시는 단독차례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예년엔 차례를 마친 불자들이 사찰 내에서 떡국을 함께 먹었는데, 올해는 가래떡과 한과, 과일, 나물 등을 포장해서 나눠드리기로 했다지요.
사찰들만 합동 차례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천주교 성당들도 최근 들어 제대 앞에 차례상을 장만하고 설날 아침 ‘합동 위령 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동성당, 목동성당 등의 위령 미사가 그런 경우이지요. 목동성당은 차례 후에 신자들과 성당 신부님·수녀님들이 서로 맞절로 새배하는 풍경도 잘 알려졌습니다. 작년 설 합동위령미사에 서초동성당은 800여명, 목동성당은 거의 1000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얼굴’인 명동성당도 직접 차례상을 마련하지는 않지만 설날 합동위령미사를 드립니다. 작년 설날엔 총 4차례의 미사에 20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다만 사찰과 성당의 차례 풍경도 미세하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사찰의 차례상엔 고기나 생선이 올라가지 않고 나물과 과일, 한과 위주로 상이 차려집니다. 성당 차례상엔 고기와 생선이 함께 올라가는 경우도 많지요. 다만 성당은 주임 신부님이 기본적으로 5년 주기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임 신부님 뜻에 따라 차례상이 차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점차 차례상을 차리는 성당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들어보면 점차 차례를 드리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사찰이나 성당에서 차례를 드리는 것도 ‘과도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이야 가정에서 차례를 드리던 분들이 아예 차례를 안 드리자니 섭섭하고 찜찜해서 사찰과 성당을 찾고 있지만 세월이 더 흘러가면 이 조차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문제는 조상을 섬기는 정신이겠지요. 차례라는 형식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입니다. 문제는 바뀌는 형식에 조상을 생각하는 정신을 어떻게 담아낼지이겠지요. 고민의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합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재테크, 부동산, IT, 책, 영어 학습, 종교, 영화, 꽃, 중국, 군사 문제, 동물 등 16가지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조선닷컴으로 접속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