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자택 인근의 삼릉 소나무숲길을 박대성-정미연 화백 부부가 산책하고 있다. 부부는 매일 이 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올리고 묵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신현종 기자
경북 경주시 자택 인근의 삼릉 소나무숲길을 박대성-정미연 화백 부부가 산책하고 있다. 부부는 매일 이 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올리고 묵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신현종 기자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 집 바로 옆 삼릉(三陵) 소나무 숲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합니다. 맨발로 걸으며 묵상하기도 하고요. 기도와 묵상은 저희 기쁨과 감사의 원천입니다.”

수묵화 대가 박대성(80) 화백과 가톨릭 성화(聖畵)로 유명한 정미연(70) 화백 부부는 20년 넘게 경북 경주에서 살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부부의 집 뒤뜰에는 예수의 수난을 표현한 14처(處)가 정 화백의 작품으로 조성돼 있다. 남편은 이 집 1층에서 불국사를 비롯한 경주의 풍경을, 아내는 2층에서 성경 속 이야기를 그려 각자 일가(一家)를 이뤘다.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삶. 그러나 부부는 각각 인생 초반과 후반에 그 누구보다 아픈 시련을 겪었다. 남편은 네 살 때 빨치산이 휘두른 낫에 한의사였던 아버지와 자신의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 서울과 대구, 전주, 제주교구 등의 주보(週報)에 성화를 그려온 아내는 수년 전 췌장암을 겪었다. 부부는 “시련은 우리에게 선물이었다”고 했다. 부부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묵주기도와 묵상이었다고 했다.

<박대성 화백>

-박 선생님은 아침 일과가 어떻습니까.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묵주기도를 올립니다. 5단까지 바치고 나면 40분 정도 걸리죠. 그다음엔 붓글씨를 한두 시간 씁니다. 매일 똑같습니다.”

-가수 송창식씨는 지금도 매일 45분씩 기타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서예 연습도 그런 것인가요?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송창식씨도 그래서 기타 연습을 할 겁니다. 작가는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강물을 보세요. 여기서 저기까지 끊고 다시 이어지지 않잖아요? 계속 흘러가는 것이죠. 무엇이든 계속 흘러가야 합니다. 무엇이든 어려움 없이 쑥 들어오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장애가 선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팔을 잃으셨어요.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저는 장애를 의식하지 못했어요. 저희 동네가 집성촌(集姓村)이었는데 주변의 가족, 친척들이 제가 상처받을까 봐 아무도 장애 이야기를 안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운동회 때였어요. 제가 발육이 좋았던지 달리기에서 1등을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수근거렸어요. ‘병신이 1등 했다’고.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온 거예요. 그때 내가 불구(장애)라는 걸 알았어요. 그 후론 운동장에 나가질 않았습니다. 그림이 탈출구였습니다.”

-그런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방황을 많이 했지요. 처음 마음이 좀 풀린 것은 형님들이 저 중학생 무렵에 논 두 마지기 값을 주고 의수(義手)를 해주셨을 때였어요. 그 후로도 체질에도 안 맞는 술도 많이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국전에서 연거푸 입선을 하면서 원망이나 한도 어느 정도 없어진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노력도 했지만 기도의 힘도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기도의 힘인가요?

“결혼 후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장모님은 아침마다 ‘박 서방이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죠. 아내가 ‘무슨 그런 기도를 하느냐’고 하면 장모님은 ‘왜? 안 되란 법이 있냐?’고 하셨어요. (남을 위한) 기도는 힘이 셉니다. 저도 자식들 생기고 손주가 생기면서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되더군요. 요즘은 나이 80쯤 먹고 보니 애들을 위한 기도에서 주제가 좀 바뀌어서 세상이 좀 평화로워지길 기도합니다.”

-일찍부터 마음 공부에 관심이 많으셨다고요?

“1980년대 아이들 어릴 때 팔당에서 한 10년 살았어요. 그때 마음공부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저희 집에서 정기적으로 마음공부 모임을 가졌어요. 당시 같이 수행하던 도반(道伴) 가운데 스님으로 출가한 분도 나왔어요. 저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절에 다니며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그런 영향인지 마음공부에 갈증이 많았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행복과 불행은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기 나름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슬픔과 괴로움도 여과시키면 행복이 될 수 있는 거죠. 평상심이란 것은 기뻐도 그 기쁨을 잠재울 줄 알고, 슬퍼도 슬픔에 깊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항상 중심에 서 있어야 더 큰 공부를 할 수 있거든요. 지나간 힘든 일들은 이미 지난 것이니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작품을 할 때엔 항상 마음을 먼저 정리하고 붓을 잡습니다.”

-마음공부는 선생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제일 중요한 것은 ‘찰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두 글자 속에 인생의 성패가 다 담겨 있습니다. 여전히 그 찰나가 나에게 온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찰나를 얻기 위해서는 ‘나’라는 아집(我執),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용서’입니다. 저는 이제 ‘용서하자’ ‘넉넉하자(넉넉해지자)’라고 기도합니다. 그래도 항상 잊어버려요. 그럴 때마다 다시 ‘용서하자’ ‘넉넉하자’고 다짐하지요.”

-언젠가 닥쳐올 그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상의 순간순간을 수행하듯 살고 계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행한다’면서 따로 자리 잡고 앉아서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상생활 순간순간이 수행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게 명상이고 기도인 것 같습니다.”

경북 경주시 삼릉 작업실에서 박대성 -정미연 화백 부부가 명상 하는 모습. 두 사람은 항상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신현종 기자

<정미연 화백>

-정 선생님은 성화를 그리시지요.

“저는 미대생 시절부터 소망이 하나 있다면, 유명해지는 것보다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됐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남에게 위안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저부터 나아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마음공부법을 수행했어요. 천주교 신자로서 ‘향심(向心) 기도’ ‘영신수련’을 통해 하느님과 대화하는 법도 배웠고요. 성화 작업을 하면서는 바오로딸 수녀님들과 함께 열흘 동안 침묵 기도 프로그램에도 참여했고, 정교회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과 함께 그리스 봉쇄수도원에서 200명 넘는 수녀님 사이에서 일주일씩 함께 기도하기도 했고요. 개신교 성경 통독 모임에도 일주일, 열흘씩 참여했고, 불교 위파사나 수행도 하고 비구니 스님과 함께 인도 배낭여행도 한 달간 했어요. 수행을 하면서 특별한 체험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도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면서 하느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래픽=정인성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대교구·대구대교구, 전주·원주·제주 교구의 주보에 성화를 게재하셨지요?

“성화를 그릴 때에는 성경 구절의 상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후에는 다음 작품을 그릴 때까지는 그 속에서 머뭅니다. 불교의 화두처럼 그 구절에 머물며 몰입해 있을 때에는 잡념이나 스트레스는 변방에 머물다 떠납니다.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도 잠시 눈을 감고 딱 앉으면 어떤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버립니다. 잡념이나 스트레스가 올 때는 ‘응, 그래 왔어?’ 하면 저를 해치지 않고 그냥 다녀갑니다. 잡념이나 스트레스를 그냥 바라보는 방법을 명상을 통해서 배운 덕분이죠.”

-그렇게 많은 성화 작업을 하셨는데 췌장암이 발병했습니다. 억울함, 원망 같은 것은 없었나요?

”처음엔 원망이 넘쳤지요. 항암치료 받을 때는 제 방에 십자가도 치우고 흑백으로 된 예수님 상본(像本·예수나 성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 하나만 벽에 걸어놓고 지냈어요. 그 상본과 대화를 한 거죠. 쓰레기통을 껴안고 토할 때엔 눈물, 콧물 다 쏟으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지금 이런 시련을 줍니까! 당신을 위해 얼마나 일했는데’ 이런 하소연을 쏘아댔죠. 그럴 때 음성이 들렸어요.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처절한 체험의 시간을 겪으며 깊숙이 주님을 만났습니다. 되돌아보니 축복이었구나 싶지요.”

-투병 이후에 전주 권상연성당 성미술 작업을 맡았고, 작년엔 절두산성지(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무명 순교자를 위한 진혼곡’ 전시를 개최했지요. 어떤 변화를 느끼시나요?

“아프고 난 후 순교자 일을 맡게 됐는데, 순교자들의 어떤 절박함과 아픔 속으로 깊게 들어갈 수 있었어요. 투병 이후의 변화라면 항상 주님의 현존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침 식사 후에 삼릉 산책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합니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또 산책 중 기도의 일상이 기쁨과 감사로 여겨집니다. 밥을 하거나 파를 다듬거나 어떤 순간에도 항상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어떤 방법을 권하시겠습니까?

“제 체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네요. 힘든 고통이 왔을 때는 우선 멈춰서 그것을 바라보고 호흡을 길게 해보세요. 그냥 바로 부딪치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거지요. 제 경우는 일생에서 가장 바닥을 쳤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바닥을 ‘탕’ 치고 올라와야만 하는 순간이죠. 그때를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살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그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