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나 펀드 투자 경험이 없는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했다는 뉴스를 읽다가 펀드 이름이 마치 ‘암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 펀드 이름은 ‘미래에셋 TIGER KRX BBIG K-뉴딜상장지수(주식)’였다. 김씨는 “작년에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과 관련된 펀드인 것 같은데, 나머지 단어들은 ‘시사 상식 퀴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 펀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미래에셋은 회사명(미래에셋자산운용), 타이거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의 ‘브랜드명’에 해당한다. 이 펀드는 한국거래소(KRX)의 BBIG K-뉴딜 지수를 기초지수로 해서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BBIG는 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것이다.
국내에서 운용 중인 펀드 이름이 너무 긴 데다 어려운 용어가 많이 섞여 있어서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이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지난 5일 사이 설정된 국내 공모 펀드 5324개의 명칭에 들어간 글자 수는 평균 33.8자였다.
◇가장 긴 펀드 이름은 61글자
펀드 이름은 실제 암호에 가깝다. ‘KB 1코노미 혁신 트렌드 증권 투자신탁(주식)’은 1인 가구 성장에 따른 수혜 기업과 혁신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1인 가구 관련 IT(정보통신), 유통, 미디어 기업에 투자하고, 혁신 기업으로서 2차전지·신재생에너지·전자부품 등 분야에 투자하지만 투자자가 펀드 이름만 보고 이러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펀드 중에서 이름이 가장 긴 것은 61글자였다. ‘우리스마트뉴딜30목표전환증권투자신탁1(채혼)ClassC-F(운용전환일이후)우리스마트뉴딜30목표전환ClassCF’라는 펀드다. 뉴딜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인데, 목표로 한 수준까지 펀드 가격이 오르면 주식·채권 혼합형 펀드에서 채권형 펀드로 전환되는 펀드다.
펀드 이름의 글자 수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름 안에 주식, 부동산, 채권 등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지만 포함하면 펀드 이름은 자산운용사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를 배려하기보다는 운용사 입장에서 알아보기 쉬운 전문용어 위주로 이름이 지어지면서 길어진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투자하는 해외 펀드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간결한 편이다. ARK INNOVATION ETF의 경우 ‘아크’라는 운용사가 ‘혁신 기업’에 투자하는 ETF다.
◇운용사 “스마트·4차 산업혁명 등 덜 써야”
자산운용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펀드 이름이 지나치게 길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관성적으로 스마트, 디지털, 뉴딜 등을 넣다 보니 펀드 이름은 자꾸 길고 어려워지는데 투자자들이 직관적으로 어떤 펀드인지는 알기 어렵게 된다”며 “고객들에게 좀 더 친절한 형태로 이름이 바뀔 필요는 있다”고 했다. 보통 자산운용사 안에서 직접 운용을 하는 사람들이나 마케팅 담당자가 펀드 이름을 결정하게 되는데, 다른 운용사 펀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포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기존 펀드명과 차이를 두려다 보면 펀드 이름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에게 펀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다 보면 이름이 길어질 수 있다”면서도 “투자자들이 어떤 펀드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이름을 간명하게 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