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기자: 이렇게 입으면 남의 시선은 느끼지 않습니까?
인터뷰이(MZ세대): 아뇨,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2022년 6월 17일 밤, 압구정 로데오 거리.
금요일이었던 지난 17일 밤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만난 MZ세대와의 대화는 무척 즐거웠다. (인터뷰이들의 신원은 대부분 가상으로 바꿨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세상의 모든 줄서기, 라인업!’ 팀은 금요일이었던 지난 17일 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동네’로 떠오른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찾았습니다. 1990년대 오렌지(과일)를 건네며 상대를 유혹했다는 이른바 ‘오렌지족’과 스포츠카를 탄 채 “야! 타!”라고 외쳐 구애하는 ‘야타족’이 출몰했던 이 골목은 대한민국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죠.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다른 상권들에 밀리며 10년 가까이 긴 침체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식어갔던 로데오 거리가 요즘 빈 점포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1990년 ‘향락의 거리’에서, 2010년 ‘쇠락의 거리’로 추락한 상권은 어떻게 부활한 걸까요? X세대에서 MZ세대 동네로 완벽하게 변신한 압구정 로데오의 주말 밤 풍경을 라인업이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1990년대 방송 뉴스’를 패러디한 ‘2022 압구정 로데오 유흥 리포트’는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상 바로보기] https://youtu.be/eKFraCU__2I

1990년대 방송 뉴스를 패러디한 '2022 압구정 로데오 유흥 리포트'. (등장 인물 신원은 모두 가상으로 바꿨다.)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1990년대: 향락(享樂)의 거리

어느 날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영상 추천 알고리즘이 기자를 1990년대 방송 리포트로 이끌었다. 2022년에 다시 보는 20~30년 전 뉴스는 보는 사람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낯선 서울 말투, 요즘 다시 유행하는 ‘어깨 뽕’ 양복, 별 이유 없이 즐거워 보이는 시민들, 기자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가 호기심과 불편함을 동시에 유발한다.

1992년 2월 '압구정 오렌지족' 문화를 보도한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이런 옛날 영상 중에서 MZ세대의 뜨거운 관심을 잡아 끈 콘텐츠는 1992~1993년 ‘강남 오렌지족’의 실태를 다룬 뉴스. 그 시절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경제 호황기의 활력과 풍류가 넘쳐보였다. ‘X세대 오렌지족’으로 불리는 부유층 자녀들의 본거지로, 최신 트렌드가 시작되는 동네였다.

조선일보 아카이브에 저장된 1990년대 압구정 로데오 거리 사진이다. 함께 붙어있는 사진 설명이 흥미롭다. "국적불명의 외래문화에 물들어 있는 압구정 젊은이들이 로데오 거리에서 슬램 춤을 추며 놀고 있다. 1999년 5월 2일 촬영."/조선일보 DB

가파른 성장으로 얻은 경제적 풍요와 낙관주의는 요즘 청년 세대에겐 꽤 낯선 그림. 게다가 ’90년대 오렌지족 리포트’는 물질주의를 죄악시하는 운동권 특유의 비판적 시선까지 뒤섞이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은 무척 흥미로웠다.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의 중심으로 통했다. 조선일보 아카이브에 저장된 2000년대 압구정 로데오 거리 모습. "10대들의 패션이 과감하다. 2004년 7월 19일 촬영."


◇2010년대: 쇠락(衰落)의 거리

“1990년대 언론에서 사회 분위기를 퇴폐로 몰아간다면서 압구정 오렌지족을 고발하는 현장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그게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죠. 그렇게 화려했던 거리가 10년 가까이 텅텅 빌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 압구정로데오거리발전위원회 박종록 회장

2013년 2월 28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한산하다. /조선일보DB

1988년 한국 맥도날드 1호점이 들어선 이래 ‘서울 최고급 상권’으로 떠오른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2000년대 후반 들어 급격히 쇠락했다. 거리의 상징이었던 맥도날드마저 2007년 폐점할만큼 임대료가 치솟았고, 대기업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매장들로 동네 고유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가로수길,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새로운 골목 유행이 계속해서 생겨나는데, 압구정 로데오는 트렌드를 놓쳐버렸어요. 한 번 흐름에 뒤쳐지고 나니, 특색있는 가게들이 모습을 감췄고, 젊은 사람들도 발길을 끊어버렸죠.” - 압구정 H부동산 정국진 대표

2019년 3월 24일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상가 공실. /조선일보DB


◇2020년대: 포차(布車)의 거리

‘임대 문의’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기 시작한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변두리 상권’처럼 생기를 잃어갔다. 2017년, 결국 건물주 10여명이 결단을 내렸다.

월세 수준을 ‘반값’으로 파격 할인하는 ‘착한 임대료’ 운동을 시작한 것. 1800만원이던 1층 상가 임대료를 800만원까지 깎은 사람도 있었다. 문턱이 낮아지자 해방촌, 이태원, 홍대, 성수에서 점포를 운영하던 창업가들이 유입됐다. 해 지면 ‘야장’ 깔고 술 파는 포장마차가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6월 말, 일주일 중 가장 한산하다는 화요일이었지만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 일대 골목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1990~2000년대 초 전성기로 돌아간 듯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갑자기 터진 코로나 위기는 기회가 됐다. 오갈 곳 없는 청춘들이 야외에서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압구정 로데오로 밀려들었다. 이곳 야장 술집들은 자연스럽게 맘에 드는 상대와 즉석 만남을 즐길 수 있는 ‘헌팅’의 메카로 떠올랐다.

이처럼 거대한 포차 거리로 변신한 요즘 압구정 로데오에선 30년 전 ‘명품 상권’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라인업 팀이 만난 건물주와 상인들은 반색했다. “더이상 부유층만 찾던 고급스러운 동네가 아니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싸늘했던 거리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압구정 로데오 거리 건물주)

1990년대 압구정 오렌지족 뉴스를 패러디한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영상에서 조선일보 문화부 최보윤 기자가 그 당시 영상을 패러디해 '문화인류학자'로 변신해 압구정 로데오 상권 부활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 압구정 로데오는 코로나를 뚫고 성장한 대표 상권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압구정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코로나 발생 직후(2020년 2분기) 16.1%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올해 1분기 4.5%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광화문(18.1%), 명동(40.9%), 강남대로(13.1%), 을지로(8.9%), 신사역(14.7%) 상권의 1분기 공실률과 비교하면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곳은 지난해 강남역을 누르고 매출 1위 상권으로도 올라섰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압구정 상권의 작년 월 평균 매출액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4092억원을 기록, 강남역 북부(4030억원)와 강남역 남부(3526억원) 매출액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 인구당 매출액은 5만9000원으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7일 밤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 밤 풍경. (인터뷰이 신원은 가상으로 바꿈) /유튜브 채널 '라인업 LineUp'

#STORY 조선일보 한경진 기자

#VIDEO 스튜디오광화문 이예은 PD·김민석 인턴PD

#유튜브 바로가기 [EP.14 불금 압구정 로데오 헌팅포차 인싸 모임 뉴스(레전드 방송사고)] https://youtu.be/eKFraCU__2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