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옥석 가리기에 나선 금융 당국이 최근 부실 부동산PF 정리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전 금융권에 “경·공매 등 이행 완료 기간을 6개월로 설정한 부동산PF 사업장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당국의 개입이 부동산PF 사업장의 신속한 구조조정에 되레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 당국이 시한을 두고 압박하면 제값을 못 받을 우려 때문에 경·공매 등이 지연되고 오히려 더 구조조정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당국 “6개월 시한” 압박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전 금융권에 다음 달 9일까지 부동산PF 사업장 정리계획을 내라는 지침을 보냈다. 정리계획 제출 대상은 사업성 평가에서 ‘유의 또는 부실우려’ 등급을 받은 모든 사업장이다. 금감원은 정리계획 이행 완료 예정일에 대해 “계획 제출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설정하라”고 명시했다. 대략 내년 2월까지 부실 사업장 정리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처음 경·공매 절차를 밟는 사업장은 공매 감정가액 산정과 사전 통지 등 행정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사업장 처리 시점이 2개월가량 밀릴 수 있다.
이 밖에도 금감원은 지침에서 부실 부동산PF 처리 속도를 높일 방안을 제시했다. 부동산PF 대출 원리금이 3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즉시 경·공매에 착수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에는 6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경·공매 대상이었다. 공매 진행 기간은 1개월 이내로 하고, 유찰될 경우 1개월 이내에 다시 공매를 진행해야 한다. 기존에 공매 유찰 때 재공매까지 3개월 간격을 둘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공매 대상은 확대되고 기간은 앞당겨진 셈이다.
유찰됐을 때 입찰가도 낮춰 빨리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금감원은 최초 1회의 최종 공매가는 장부가액으로 설정하되, 유찰 후 재공매 때는 직전 회 최종 공매가보다 낮춰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직전 최종 공매가보다 10%가량 낮게 설정하는 등 공매가를 계속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PF 경·공매 단 한 건만 성사
금융 당국은 앞서 ‘유의 또는 부실우려’ 등급으로 분류되는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규모를 부동산PF 전체의 약 5∼10%로 추산했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PF 사업성 평가 규모가 약 230조원임을 고려하면 구조조정 물량이 최대 23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이달 초까지 부동산PF를 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등 4단계로 세분화하고, 전 금융권에서 사업성 평가 결과를 제출받아 왔다.
유의 등급 사업장은 사업 재구조화 또는 자율 매각 계획을, 부실우려 등급은 상각 또는 경·공매를 통한 매각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상각이란 부실 사업장에 들어간 자금의 회수를 포기하고 손실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 당국이 이번에 속도전을 주문한 이유는 지금까지 부실 부동산PF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판단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4월부터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업권별 경·공매 규정을 만들어 시행했고 이후 경·공매 200여 건이 진행됐지만, 낙찰된 것은 단 한 건으로 저조해 이번 지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은 전 금융권에서 정리계획을 받은 뒤 미비점이 발견될 경우 다음 달 19일부터 현장 점검과 경영진 면담에 나설 계획이다. 이후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경·공매 물량이 나올 것으로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시한이 되레 빠른 구조조정 방해”
다만 업계에선 금융 당국의 속도전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경·공매에서 부동산PF 사업장을 매입하려는 측이 ‘금융 당국 압박에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이라고 판단해 매물이 나와도 안 사고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며 “매입자들 입장에선 금융 당국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질 걸로 예상할 테고, 추가 조치를 기다리면서 6개월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금융 당국의 부실 사업장 처리 압박이 거듭될수록 되레 경·공매 절차가 지연될 수 있고, 매물 가격 인하에 따른 손실은 온전히 저축은행 등 현재 부실 부동산PF 사업장을 떠안고 있는 금융회사들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