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의 부품사들이 급속히 덩치를 키우고 있는 반면 미국 부품사들은 쇠락하고 있다. 20년 전 세계 10대 부품사 중 유럽 회사는 보쉬와 프랑스 발레오뿐이었지만 현재는 5사(ZF·콘티넨탈·포레시아 추가)로 늘었다. 20년 전 최대 부품사였던 미국 델파이와 3위였던 미국 비스테온은 2009년 금융 위기 때 미국 완성차 회사들이 파산하면서 10위권에서 사라졌다. 10위권에 든 한국 부품사는 현대모비스(7위)가 유일하다. 완성차 업계에선 “시장을 과점한 부품 업체들이 완성차 업체 위에 군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한국 부품사들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대 부품사, 절반이 유럽

15일 일본 닛케이신문은 지난해 매출 기준 ‘글로벌 100대 부품사’를 20년 전과 비교한 결과를 보도했다. 세계 최대 부품사 독일 보쉬는 지난해 매출(54조원)이 20년 전의 2.3배로 늘었다. 차량용 반도체와 자율 주행 시스템까지 안 만드는 게 없어 대표적인 ‘티어(Tier) 0.5′ 부품사로 불린다. 0.5 티어란 완성차 업체에 ‘을'의 입장인 부품 공급사가 아닌, 완성차 업체와 대등하거나 우위의 위치에서 거래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터지자, 완성차 업체들이 보쉬로 달려가 부품을 우선 공급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20년 전 10위권에 없던 독일 ZF는 6.6배로 늘어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변속기를 주로 만들던 ZF는 2015년 미국 TRW를 135억달러(약 15조원)에 인수하며 종합 부품 업체로 변신했다. 타이어 업체였던 독일 콘티넨탈은 2015년부터 인포테인먼트 업체 ‘일렉트로빗 오토모티브’를 시작으로, 자율 주행차용 센서와 소프트웨어 기술 기업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반면 미국 부품사들은 2009년 GM과 크라이슬러 파산과 함께 쇠락했다. 20년 전엔 10대 부품사 중 6사(델파이·비스테온 등)가 미국 업체였지만, 대부분 부도가 나거나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현재 시트 제조업체 ‘리어’만 10위권에 남아있다.

일본 업체는 덴소(2위)와 아이신(5위) 등 도요타 계열사들이 10위권 내 들었다. 덴소는 20년 전보다 매출이 2.8배로 성장했다. 도요타의 자회사로 출발했지만, 도요타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으로 현재 매출에서 도요타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정도다.

◇한국 부품사 존재감 약해

한국 부품사 중 유일하게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곳은 현대모비스다. 2011년 처음 10위권에 진입해 지난 3년 연속 7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매출(38조원)에서 현대차·기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70%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사업보고서상 내부 거래에 포함되지 않는 ‘애프터서비스 부품 사업'까지 합치면, 90%에 달하는 수준이다. 현대모비스는 크라이슬러에 섀시 모듈, GM·폴크스바겐 등에 램프·자율주행·전장 부품을 공급하며 공급처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대차에 대한 견제로 외연 확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 50위권에는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같은 현대차 계열사가 포함돼 있다. 현대차 계열이 아닌 부품사 중 50위권에 오른 회사는 한온시스템(39위)과 만도(50위) 등 2곳뿐이다. 덴소에 이어 전 세계 공조 부품 시장 2위인 한온시스템은 현대차 외에도 포드·BMW·테슬라 등 다양한 공급처를 갖고 있어 글로벌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한온시스템은 그러나 최근 최대 주주 한앤컴퍼니가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섀시(차대)와 자율 주행 시스템을 주업으로 하는 만도는 현대차그룹 비율이 55% 수준으로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매출 규모가 5조원대로 글로벌 부품 공룡들과 경쟁하기에 약한 편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차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완성차와 부품사가 모듈을 통째로 함께 개발하는 데다,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기술로 구동하는 방향이 된다”며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고 소프트웨어 기술이 뛰어난 부품 업체가 많을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