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현대자동차는 베이징 자동차와 함께 중국 내 합작회사 베이징현대에 총 11억달러(약 1조6206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25년부터 중국 시장에 최적화된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2000년대 초 중국에서 ‘현대 속도’란 신조어를 만들며 질주하던 현대차는 중국 시장점유율이 1% 미만으로 떨어져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2021년 베이징 공장, 2024년 충칭 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창저우 공장도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2024년 9월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그룹은 1937년 설립 이후 첫 공장 폐쇄를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노조 반발로 공장 폐쇄는 철회했다. 하지만 2030년까지 독일 내 일자리를 약 3만5000개 줄이는 데 노사가 합의했다. 2024년 11월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있는 합작공장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은 비용 감축에 나서는 한편 중국 전기차 사업 투자는 확대하고 있다. 2023년 7월 중국에서 7억달러(약 1조313억원)를 들여 현지 전기차(EV) 기업 샤오펑(小鵬) 지분 4.99%를 인수하고 전기차 두 종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폴크스바겐은 해당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중국에서 최소 30종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일본, 유럽, 한국 등의 기업이 주도해 온 전통 자동차 산업이 중국의 전기차 산업 약진으로 생존경쟁에 돌입하고 있는 사례다. 2024년까지 16년 연속 세계 1위 자동차 생산국을 유지해 온 중국은 2023년부터 2년 연속 자동차 최대 수출국에도 올랐다. 전 세계 전기차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달리고 있을 만큼 자동차 산업의 게임체인저 영역인 전기차 시장에서 성장한 덕분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9년 유럽의 환경 규제와 중국 전기차 산업의 부상을 두고 수년 내 ‘카마겟돈(자동차와 종말적 혼란의 합성어)’이 올 것으로 예측했는데, 2024년엔 유럽의 일자리 6%를 떠받치는 자동차 산업이 중국 탓에 ‘퍼펙트 스톰’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2006년까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의 지위를 유지해 온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중국 사업 적자 확대로 현지 일부 공장 폐쇄, 브랜드와 차종 감축을 추진 중이다. GM은 2024년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문건을 통해 상하이자동차(SAIC) 및 디이자동차(FAW) 등과 합작 사업 구조조정으로 최대 29억달러(약 4조2726억원), 합작 투자사 자산 가치 상각으로 27억달러(약 3조9779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2024년 자동차 원조 기업 미국 포드를 제치고 세계 7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월간 기준으론 2024년 10월 스텔란티스를 제치고 세계 4위에 올라 3위 현대차를 바짝 추격했다. 전 세계 순수 전기차 판매에서 2023년 4분기에 이어 2024년 4분기에도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오른 BYD는 1월 16일 한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자동차 산업의 전통 강호들은 거침없는 중국 차의 질주에 맞서 중국 사업 재편과 합종연횡 등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고관세 부과와 보조금 차별화 등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자동차 산업 후발 주자 중국이 흔들고 있는 자동차 산업 판도와 생존경쟁의 현황 등을 짚었다. 자동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 새 변곡점으로 떠오른 중국 車
미국 컨설팅 회사 엘릭스파트너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동차 산업의 변곡점은 일본 기업의 높은 생산성, 한국 기업의 출현 그리고 테슬라였는데, 중국이 새로운 변곡점으로 떠올랐다”라고 분석했다. 엘릭스파트너스의 ‘세계 자동차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중국 완성차 업체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024년(추정치) 21%에서 12%포인트 높은 33%에 달할 전망이다. 유럽 시장점유율은 2024년 6%에서 2030년 12%로, 중동·아프리카는 8%에서 39%로, 중남미는 7%에서 28%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강점은 ‘속도’다. 기존 완성차 업체의 경우 신차 개발에 40개월이 걸리는데, 중국 업체의 신에너지차(NEV·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전기차 등) 개발 기간은 절반인 20개월에 불과하다.
스마트화 흐름도 중국 차의 남다른 장점이다. 특히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디지털화, 자율주행 등에서 중국의 속도전과 기술 수준은 세계 선두권이다. 화웨이, 샤오미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전기차 시장에 가세해 흐름이 더 빨라졌다. 중국은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일찍이 자동차에 접목했다. 양진수 현대차그룹(HMG)경영연구원 모빌리티산업 연구실장은 “중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전기차에만 있지 않고, AI, 자율주행 등에서도 볼 수 있다”라고 했다.
中, 美·유럽 규제에 직진출과 시장 다변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17.8~45.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미국도 2024년 9월 중국산 전기차에 102.5%(최혜국 관세 2.5%에 100% 추가)의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 규제에도 중국 자동차 산업의 공습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중국 차는 EU의 고관세를 피하기 위해 유럽 지역에 직접 투자하거나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BYD와 창청(長城)자동차는 헝가리에 제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고, 치루이(奇瑞)자동차는 스페인 현지 업체와 함께 바르셀로나 공동 투자를 발표했다.
미국 규제는 중남미 시장 공략으로 돌파한다. 브라질 카마라의 포드 공장이 2021년 폐쇄됐는데, 이를 인수한 곳이 BYD다. BYD는 멕시코에도 공장을 건설 중이다. 창청도 브라질 상파울루의 벤츠 공장을 인수해 이 지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에 18억달러(약 2조6519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합병으로 中과 경쟁…中 기술에 러브콜도
2024년 12월 23일 닛산과 혼다는 느닷없는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업체의 부상으로 자동차 산업이 큰 변화를 맞았다. 우리가 2030년까지 그들(중국)과 싸울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패배할 것”이라고 했다.
2024년 9월 현대차그룹과 GM은 승용·상용차, 내연기관차와 친환경 에너지, 전기·수소 기술 공동 개발·생산에 협력하기로 했다.
원자재도 함께 구매한다. 글로벌 3위, 미국 1위와 만남으로, 이번 협력에는 이들의 미래 시장에 대한 절박함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스텔란티스는 2023년 중국 링파오(零跑· Leapmotor) 지분 20%를 매입하고, 링파오를 유럽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 스텔란티스는 2024년 12월 41억유로(약 6조1855억원)를 투자해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CATL과 스페인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닛산은 화웨이와 2024년 11월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두 회사는 화웨이의 하모니 OS(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카 콕핏을 개발한다. 혼다도 중국 시장 전용 전기차 브랜드 ‘예(Ye)’에 화웨이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좌우할 SDV 경쟁에서 중국이 앞서가면서 중국 기술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 자동차 기업이 중국에 기술을 이전해 오던 일방통행은 끝났다”는 베아트리스 C. 카임 CAR (Center Automotive Research) 디렉터의 말은 세계 자동차 산업의 격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