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위와 3위 자동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의 합병이 무산됐다. 양사는 13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 협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 시장에서 중국차에 밀리고, 전기차 전환에 늦은 두 회사의 ‘합병’이란 강수가 두 달 만에 없던 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합병 방식과 구조 조정 규모를 둘러싼 이견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합병 후 시너지 효과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작년 12월 맺은 합병을 위한 기본 합의서를 철회하기로 했다. 합병 무산의 결정적 계기는 합병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다. 양사는 작년 말 지주사를 설립하고 혼다와 닛산을 지주사의 자회사로 두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혼다 측에서 닛산을 혼다의 자회사로 두는 방안을 추진하며 닛산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혼다는 (합병의) 전제가 되는 닛산의 사업 구조조정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주도권을 취하기 위해 자회사로 만드는 것을 타진했다”며 “이것이 대등한 통합을 생각하는 닛산의 반발로 이어져 갈등이 깊어졌다”고 전했다.
◇합병 왜 결렬됐나?
두 회사 간 골이 깊어진 것은 올해 초부터다. 시가총액에서 닛산의 4배에 달하는 혼다가 닛산에 대규모 구조 조정을 요구했지만, 닛산이 이에 부합하지 못하자 자회사로 두려 했다는 것이다. 닛산은 작년 2~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4% 줄어들 정도로 실적이 부진했다. 이에 닛산은 작년 11월 전 직원의 7%에 해당하는 9000명을 해고하고 지난달 미국 완성차 생산량의 약 25%를 삭감하는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혼다는 공장 폐쇄 등 더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양사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것도 합병 논의가 결렬된 배경으로 꼽힌다. 닛산과 혼다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 해외 시장이 유사하고,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위주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보단 강점만 겹치는 것이다. 양사가 후발 주자인 전기차, 소프트웨어 분야를 이끌어 줄 구심점이 없단 우려도 나왔었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은 “기술력과 재무 건전성 등 협상 시작 당시 몰랐던 양사의 정보를 점차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한 것으로 보인다. 혼다와 닛산 모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합병으로 인한 득보단 실이 큰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혼다의 최근 재정적 부담이 커지며 합병을 계속할 여력이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혼다는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크루즈에 8억5000만 달러 안팎을 투자해 무인 택시 사업을 진행했는데, GM이 최근 이 사업에서 철수하며 투자금을 잃게 됐다. 또, 혼다는 소니와 합작사를 세우고 전기차를 별도로 출시하는 만큼 닛산과 협력해 전기차를 개발할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기계적 합병 유효 기간 다해
양사는 이날 합병 계획은 철회했지만,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등 특정 분야에서 협력은 이어가기로 했다. 이처럼 회사 간 합병을 통해 몸집을 늘리는 기계적 통합이 유효기간을 다했음에도 기술 협력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최근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섣불리 합치기보다는 작은 몸집으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높아진 것이다.
작년 GM과 현대차, 폴크스바겐과 리비안이 손을 잡은 것처럼 앞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합병이 아닌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기업 간 협력이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작년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현대차는 최근 상용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혼다와 닛산의 합병 결렬은 전통의 자동차 회사 간 융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며 “중국 리스크로 어려움을 겪는 자동차 기업들이 생존 방식을 모색하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협력해야 할지 업체마다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