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에너지 전문가로 꼽히는 대니얼 예긴 IHS마킷 부회장은 Mint인터뷰에서 "코로나 이후 석유 수요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며 "2030년대 전반부를 석유 수요 정점 시기로 예상했다. /Cary Hazlegrove 제공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사람들 발이 묶이고,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지난 3~4월 세계 석유 수요는 평상시의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일 메이저’로 불리는 초대형 에너지 기업들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급기야 지난 4월 2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다. ‘석유 시대의 종말’을 논하는 기사와 분석이 쏟아졌다.

‘마이너스 유가' 상황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석유 수요와 국제 유가는 횡보 상태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난 후 에너지 지형도는 어떻게 바뀔까. Mint가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73) 부회장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지난 15일, 그의 새 책 ‘The New Map’ 출간 이후 국내 언론과 첫 인터뷰다. 예긴 부회장은 뉴욕타임스가 ‘미국 최고 에너지 권위자’로 칭한 인물로 20세기 석유를 둘러싼 국제 정치사를 다룬 ‘황금의 샘’(원제 The Prize)으로 199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속편 격인 ’2030 에너지전쟁’(원제 The Quest)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예긴 부회장은 클린턴·조지 W 부시·오바마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까지,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 고문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사태가 에너지(석유) 수요에 타격을 준 건 맞지만 회복 가능하다고 본다.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속단해선 안 된다."

미국 텍사스주 러빙카운티에 있는 셰일 유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석유 수요 정점은 2030년대 전반부”

–전염병 확산으로 석유 수요가 30% 가까이 줄었다. 위기 아닌가.

“단기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맞다. 대형 석유 기업들은 올해 초 계획 대비 자본 지출을 약 28% 줄였고, 주요 자산을 매각하며 버티고 있다. 다만 미국·유럽 에너지 기업의 지향점이 조금 다르다. 로열더치셸이나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 같은 유럽 회사는 ‘석유·가스 기업’에서 재생에너지 개발을 포함한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하려고 힘쓰는 데 반해, 미국 엑손모빌·셰브론은 셰일 채굴 같은 핵심 사업에 더 집중하고 있다.”

–석유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재택근무가 늘고 디지털 행동 양식이 확산하고 있지만, 석유 수요가 근본적으로 위축된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대중교통을 피해 자가용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기름을 더 많이 소비할 가능성이 있다. 석유화학 부문도 간과해선 안 된다. 단적으로 코로나 예방을 위해 쓰는 N95 마스크를 포함해 각종 의료 기기가 석유화학 제품이다. 세계적으로 석유 소비가 더 확산할 여지도 있다.”

그는 앞으로 전기차 판매가 많이 늘겠지만, ‘자동차’라는 전단(戰團)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세계 자동차 전단은 현재 14억대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2050년 20억대를 넘는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20억대 중 약 6억1000만 대가 전기 자동차로, 거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내연기관 차라는) 함대가 뒤집어질 수준은 아니다. 연간 신차 판매량은 전체의 약 6~7%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자동차가 11.8년 동안 도로에 남아 있다. 물론 전기차는 언젠가 따라잡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신차만 놓고 보면, 2050년까지 판매량의 51%가 전기차다.’

–석유 사용이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을까.

“미국엔 인구 1000명당 자동차 867대가 있지만 중국은 160대, 인도는 37대뿐이다. 이런 국가의 소득이 높아지면 에너지 소비도 덩달아 늘어난다. 북미나 서유럽 등 선진국을 보면 석유 수요가 감소하는 듯 보이나, 신흥국에서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석유 수요가 계속 늘어날 수는 없을 텐데, 정점은 언제쯤일까.

“예상한 시나리오대로라면 2030년대 전반부쯤이다. 현재 하루 1억 배럴쯤 하는 석유 수요가 그때 최고점을 찍으리라고 본다. 아직 ’종말'을 얘기하기엔 다소 이르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 중국을 주목하라”

예긴 부회장은 신간 ‘The New Map’에 “현재 세계 에너지원의 84%에 달하는 화석 연료 비율이 점차 재생에너지로 옮겨가 결국 ‘에너지 믹스(혼합)’ 시대가 올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 전환 과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중국을 주목하라고 했다.

–태양광·풍력이 화석 연료를 곧 대체하는 건가.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이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태양광·풍력이 안정적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으려면 날씨 등에 영향을 받는 간헐성을 줄이고, 에너지 저장 등 기술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그 과정에 중국을 꼽은 이유는.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다. 중동에서 원유를 들여올 때 남중국해를 반드시 거치는데, 이 지역에서 계속 미국과 갈등을 빚어 왔다. 중국은 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러시아에서 대규모 천연가스를 공급받고 있다. 전기차 개발에도 정말 열심이다. 전기차 배터리 필수 성분인 리튬의 중국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이런 공급망 장악을 통해 에너지 분야 주도권을 가지려고 한다. 반면 석유·가스에 경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중동 국가들은 에너지 전환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셰일’로 상징되는, 미국의 에너지 산업은 어떻게 되나.

“지난 10년간 셰일 산업의 놀라운 발전으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이 됐다. 코로나로 인한 유가 하락으로 폭발적 성장은 어려워졌지만, 셰일 산업은 미국의 단단한 축으로 한동안 버텨줄 것이다.”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셰일 산업의 운명도 달라질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셰일 산업을 강력히 지지하는 인물이다. 반대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생에너지와 기후 변화 문제에 더 집중하겠지만, 미국 석유·가스 산업 종사자가 1000만명 이상이라는 점을 간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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