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헤지펀드의 이례적인 실수일까요. 앞으로 닥칠 위험에 대한 예고편일까요. 월가(街)를 뒤흔드는 이른바 ‘아케고스 사태’를 둔 시장의 불안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아케고스 사태는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 빌 황이 운용하는 펀드 ‘아케고스(Archegos)’가 은행들로부터 받은 막대한 빚으로 투자했다가 주가가 하락하며 은행까지 큰 손실을 본 사건입니다. 노무라가 이미 약 2조원 정도를 잃을 전망이라고 발표를 했고 크레디트스위스·UBS 등에 이어 일본 은행인 미츠비시UFJ도 관련 손실 약 3300억원가량 냈다는 소식이 지난달 말 전해지는 등 글로벌 금융 시장으로 충격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크게 오른 증시, 이 기회를 잡기 위한 ‘빚투(빚내서 투자)’의 증가 등 지금의 상황을 볼 때 ‘아케고스 사태’와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위험이 아직 닥치진 않았지만,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들이 누적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아케고스를 시작으로 비슷한 충격이 더 올 가능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불어난 부채, 낙관 일색인 시장의 분위기, 테크주 쏠림 투자 등 지금 시장엔 큰 위험들이 많다”라고 전했습니다. 뭔가 복잡하게 얽힌 듯한 아케고스 사태, 일회성 사고일까요 아니면 연쇄 충돌의 전조일까요. 5문답으로 풀었습니다.
◇Q1. 아케고스 사태가 뭔가요.
‘아케고스’는 월가(街)의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황이 운용하는 가족 펀드입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의 돈만 굴립니다. 규모는 약 70억 달러이고요. 아케고스는 투자를 위해 은행들로부터 돈을 빌려다가 썼습니다. 사실상 주식 담보 대출과 비슷한 형태인 TRS(total return swap·총수익 스와프)라는 파생상품을 활용했습니다. (이 상품의 구조는 뒤에서 좀 더 설명드릴게요.) 빚을 내서 투자하면 증시가 오를 때는 이익이 더 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손실도 커진다는 겁니다. ‘내 돈’ 1억원으로 투자했는데 주가가 반토막이 나면 5000만원만 손해를 보면 되지만, 4억원 빚을 내 총 5억원을 투자하면 2억5000만원이 날아가겠죠. 이자는커녕 원금도 모두 날리고 은행 빚은 못 갚게 됩니다. 은행들은 이런 위험이 너무 커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해당 은행이 빌려준 돈으로 산 주식이 어느 정도 하락하면 현금을 계좌에 더 넣으라고 요청합니다. 이른바 ‘마진콜 발생’입니다. 돈을 못 넣으면? 담보로 잡았던 주식을 강제로 팔아버립니다.
아케고스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디스커버리·바이어컴CBS 등 아케고스가 산 주가가 최근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아 크게 하락했습니다. 아케고스가 돈을 추가로 못 넣자 은행들이 주식을 내다 팔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던진 주식 때문에 주가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했습니다. 주식을 다 팔아도 은행이 원금도 못 건지게 된 거죠. 아케고스는 자체 자금의 약 5배에 달하는 돈을 빌려다 투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Q2.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 쓸 수가 있나요.
단순한 주식 담보 대출이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아케고스는 위에 말한 TRS란 파생상품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TRS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헤지펀드가 요청하면 은행이 해당한 주식을 삽니다. 주식을 보유한 주체는 은행이지만, 이 주식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데 따른 수익 혹은 손실은 헤지펀드가 가져갑니다. 헤지펀드는 대신 은행에 수수료를 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 상품, 주식 담보 대출과 비슷하지 않나요. 주식 담보 대출의 경우 주식은 헤지펀드가 보유하고, 은행이 그 주식을 담보로 잡고, 헤지펀드는 수수료 대신 이자를 낸다는 점이 다르지요. 하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주식의 수익을 헤지펀드가 가져가고, 헤지펀드가 은행에 돈을 내고, 손실이 커질 경우 은행이 강제로 주식을 팔 수 있도록 계약을 했다는 점에선 말이죠.
◇Q3. 그럼 대출을 받지 왜 그런 복잡한 상품을 쓰나요.
대출은 제약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주택 담보 대출 등을 받으려면 소득이나 자산 규모도 보고,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의 비율도 대략 정해져 있지요. 파생상품은 이런 규제가 없습니다. 헤지펀드 입장에선 자신이 산 주식이 무엇인지 알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헤지펀드 등이 보유한 자산을 들여다보는데, TRS를 활용하면 자신의 투자 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도 편합니다. TRS는 대출 규모에 잡히지도 않아 자기자본 규제 등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거든요.
맹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보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되는 대출과 달리, 은행은 헤지펀드가 다른 은행으로부터 얼마를 끌어다 쓰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아케고스 사태의 경우에도 노무라·크레디트스위스 등은 다른 은행들이 아케고스에 그렇게 많은 돈을 (사실상) 빌려줬다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헤지펀드가 남의 돈을 너무 많이 끌어다 투자를 했다면 주가가 하락할 때 굉장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데 이런 장치가 발동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이유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TRS는 평시엔 괜찮겠지만 증시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시장의 ‘대량 살상 무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Q4. 아케고스 외에도 이런 식으로 투자한 회사가 많은가요.
WSJ 등에 따르면 이런 파생상품은 최근 월가에 많이 퍼져 있는 관행이라고 합니다. 대출과 달리 정확한 규모도 잘 파악되지 않아 더 문제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부실 주택 담보 대출이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마구 만들어지면서 촉발됐는데, 지금도 뭔가 시장이 보지 못하는 위험이 자라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금융위기 이후 SEC는 TRS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겠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그 후로 10년 동안 진행된 건 거의 없더라는 비난도 일고 있습니다. SEC는 아케고스 사태를 계기로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TRS 규제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Q5. 증시, 나아가 한국 증시도 영향이 있을까요.
파생상품의 위험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지금 글로벌하게 ‘빚투’가 크게 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한 위험입니다. 아케고스 사태에서 보듯이 빚을 너무 많이 내서 투자하면 주가가 하락할 때 큰 손실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은행 등도 노무라·크레디트스위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할 수 있고요. 최근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증시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요. 만약 주가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아케고스 사태 같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은행이 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금융 전반으로 위험이 번지는 것이 최악의 상황입니다.
한국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한국의 ‘빚투’(신용거래융자) 규모는 22조2388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로 부풀어 있습니다. 최근엔 주가 하락에 의한 마진콜을 막지 못해 주식을 강제 매도당하는 이른바 ‘반대 매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난 한해 증시가 많이 올라 있어 하락 위험도 존재하는 만큼, 빚을 내서 하는 투자는 가능할 때 줄이는 편이 좋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