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을 하게 되면 아파트 경비원으로도 일할 수 없고 심지어 가축 분뇨 처리 업체에서도 일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법은 바꾸고 싶습니다.”
서경환 서울회생법원장은 지난 14일 “파산 제도는 ‘실패를 용납해야만 자본주의가 굴러간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수립됐다”면서 “파산 제도는 재기와 재취업으로 완결되는 만큼 취업 제한과 관련된 현행법의 문제점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파산자의 취업 제한 관련 규정은 226개 개별 법에 흩어져 있어 개정 등 보완이 쉽지는 않다. 예컨대 파산 후엔 주차장 보수(補修), 가축 분뇨 운반·처리, 아이 돌보미, 경비 등의 일을 일단 못 하게 되는데 각각의 직업에 대한 규정이 각기 다른 법에 명시돼 있다.
이들 법에는 정확히는 ‘파산 선고 후 복권되지 않은 자’가 취업할 수 없다고 적혀 있지만, 복권 여부 결정 전이라도 파산 절차가 일단 시작(파산 선고)되면 취업 절벽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서 법원장은 말했다. 파산 선고를 받은 뒤 수개월이 지나야 빚을 탕감할지(복권) 결정되지만, 일단 파산 선고만 나도 취업할 길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새 법안을 만들 때마다 해방 후 일본 법에서 가져온 문구를 ‘복붙(복사해 붙이기)’하다 보니 생긴, 법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라며 “법무부와 가장 효율적인 개정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외환 위기 당시 첫 개인 파산 재판이 열렸고, 5명이 빚을 면책받았는데 당시 언론은 ‘무더기 빚 탕감’이라고 비난했다”면서 “과거와 비교하면 우리 사회가 실패를 더 세련되게 용납할 방법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외환 위기 당시 젊은 판사였던 그는 당시 변호사협회지에 기고까지 하면서 “파산 제도를 잘 이용해야 한다”라고 적극 홍보에 나섰다. 선량하되 운이 없었던 채무자라면 빚 때문에 한 인간, 나아가 가족이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사회 전체에 이익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빚 탕감에 대한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빚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파산 제도를 알려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선량하지만 운이 없었던 채무자라면 빚 때문에 한 인간, 나아가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만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믿습니다.”
지난 2월 취임한 그는 외환 위기 때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당시 민사 50부)에서 근무했고, 2013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를 거쳤다. 서울회생법원은 2017년 만들어졌다. 회생·파산 전담 법원은 주요국 중 미국과 한국에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