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서울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붙은 취업 게시물을 살펴보는 사람. 코로나로 취업난이 심해지자 서울시가 청년들에게 취업장려금을 지급했으나 사용처가 한정적이고 결제 방법이 까다로워 불만이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소윤(26)씨는 지난달 구청이 주는 미취업 청년 취업 장려금 50만원을 받았다. 취업 장려금은 코로나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청년에게 지급하는 ‘청년판 재난지원금’이다. 졸업 후 2년 이내 미취업 상태인 청년(만 19~34세) 17만명을 대상으로 1인당 50만원씩 총 868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씨는 이 돈을 평소 자주 가는 스터디카페에서 쓰고 싶었지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취업 장려금은 반드시 제로페이로만 쓰게 되어 있는데 이씨 집 주변 스터디카페는 제로페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구청에서 준 돈이라서 성북구를 벗어나면 아예 쓸 수가 없다. 이씨는 “동네 제로페이 가맹점 뒤져서 친구와 차 마시는 용도로 지금까지 5만원 정도를 썼는데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제로페이는 박원순 전 시장이 만든 관제(官製) 결제 시스템이다.

서울시가 취준생을 위해 올해 초부터 취업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제로페이로 지급돼 쓸 수 있는 곳이 한정된 데다, 사는 곳을 벗어나면 안 되는 등 제약이 너무 많아 불만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청년 실업자를 돕는다며 요란히 홍보를 한 것과 달리 청년들은 학원·스터디카페·사진관 등 정작 취업 준비에 필요한 소비엔 쓸모가 없다고 토로한다.

◇“학원비도 못 내고 스터디카페도 안 된대요”

서울시는 자치구를 통해, 제로페이를 통해서만 쓸 수 있는 모바일 서울사랑상품권으로 취업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제로페이 가맹점이 아니면 사용을 못 한다는 뜻이다. 청년들은 지원금 자체의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지나치게 까다로운 사용 조건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취준생 박모(25)씨는 “지원금을 받아 면접 볼 때 입을 정장을 사려고 했지만 백화점에선 제로페이 결제가 안 되더라. 그렇다고 재래시장에서 면접용 정장을 파는 제로페이 가맹점을 찾자니 이 또한 쉽지 않았다”고 했다. 성북구에 사는 신모(26)씨는 학원비를 내려고 취업 장려금을 받았는데 학원이 마포구에 있어 목적대로 쓰지 못했다. 그는 “학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스터디카페에 가려고 해도 거주하는 지역이 아니라고 사용을 못 한다. 올해 말이 되면 남은 돈은 사라진다 하던데 취업 준비와 상관 없는 곳이라도 그냥 빨리 써야 할 판”이라고 했다.

본지 취재 결과 취준생들이 선호하는 대형 학원 대부분은 제로페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종로 YBM어학원, 종로·강남·신촌 파고다어학원 모두 제로페이 결제는 불가능하다. 제로페이가 내세우는 장점인 ‘결제 수수료 0원’은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연 매출 8억원 이하여야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형 학원은 대부분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제로페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까다로운 조건… 20%도 못 쓴 자치구 수두룩

사용처 제한이 까다로울뿐더러 받을 수 있는 자격 기준도 복잡해 취업 장려금을 받는 청년 자체가 적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는 인구에 따라 자치구별로 약 3000~1만100명 분의 취업 장려금을 할당했지만 예상했던 금액의 절반도 지원금을 풀지 못한 곳이 많다. 취업 장려금은 졸업 후 2년이 지나면 자격이 없고 청년 구직 활동 지원금 등 다른 취준생 관련 지원금을 받았어도 신청이 안 된다.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예상만큼 신청자가 많지 않아 예산만큼도 지원금이 나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약 5000명 분을 서울시로부터 할당받은 성동구의 취업 장려금은 약 1100명만 받아갔다. 양천구는 6800명에게 34억2000만원을 지원하려 했지만 지난달까지 35%만 나갔다. 금천구·서초구·동대문구 등도 할당액 대비 실제 지원금 비율이 25%가 안 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 장려금은 취준생들이 실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알아보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청년을 돕는다고 생색만 많이 내는 전형적인 ‘청년팔이’”라며 “취준생의 어려움을 돕는다는 정책의 목표에 맞도록 지금이라도 지급 방식 및 사용처 등을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