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밤 9시 30분. 방 안에 앉아 카카오톡 메시지로 날아온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 링크를 누르고 입장하니, 국내 IT대기업에 다닌다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상대방으로부터 이직 팁이 쏟아졌다. 업계 사람과 이직 희망자를 일대일 연결시켜 주는 커리어(경력) 플랫폼 ‘커피챗’에서 특정 기업의 5~8년 차 현직 직원에게 대화를 신청했는데, 10여 분 만에 상담이 잡힌 것이다. 이 직원으로부터 20분간 화면 없이 목소리로만 대화하며 근무 환경과 보수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평생 직장은 옛말이고 최근 ‘이직 계획’을 세우는 MZ세대가 늘면서, 구인·구직 플랫폼 시장이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엔 코로나로 대면(對面) 정보 수집이 어려워지면서 원하는 시간에 어디에서나 기업 관계자와 연결할 수 있는 비대면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리멤버(명함 관리 앱)·잡플래닛(구직) 같은 기존 기업들도 구직자의 경력만 입력해 놓으면 온라인으로 이직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스카우팅 서비스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흐름을 타고 비대면 구직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며 “국내에는 미국 링크트인 같은 업계 ‘큰손’이 없는 상황이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소문 안 나는 이직’에 MZ 직장인 몰려

각 업체가 앞다퉈 업계 현직자와 이직 희망자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과거 정보를 얻기 위해 학연·지연·혈연을 총동원해 수소문하던 이직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식사 자리를 마련하거나 미팅을 갖는 대신, 퇴근 후 남는 시간 집에서 간편하게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플랫폼의 장점은 필요한 질문만 뽑아 압축적으로 물을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라는 것. 지난 2일 출시된 커리어 정보 익명 통화 앱 ‘묻다’는 통화 시간을 5분(4000원) 단위로 끊어서 신청할 수 있다. 현직자와 가능한 시간대를 맞추기 전 미리 궁금한 점을 작성해 제출한다. 대화에 흥미가 없으면, 5분 만에 질의 응답을 끝낼 수 있다. 주민형 대표는 “퇴근 후 짬을 내 이직 준비를 하는 직장인을 위해 5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익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직에 실패할 경우에도 사내 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명함 관리 앱으로 유명한 리멤버는 경력직 구인·구직을 연결하는 서비스 ‘리멤버 커리어’를 운영하고 있다. 구직자가 자신의 프로필을 등록하면 기업이 직접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검색하고 채용 제안을 보낼 수 있는 방식의 인재 검색·스카우트 서비스다. 이 밖에 개발자에게 특화된 채용 플랫폼(프로그래머스)을 운영하는 그렙, 기업을 위한 입사 지원자 평판 조회 플랫폼 스펙터도 굵직굵직한 기업이나 투자사에서 초기 투자금을 유치하며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으로 돈도 몰린다

이직이 활발해지면서 구인·구직 플랫폼으로 돈도 몰리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채용 플랫폼 원티드를 운영하고 있는 원티드랩은 11일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청약 증거금으로만 5조5291억원을 끌어모았다. 같은 날 청약 경쟁자인 크래프톤(5조358억원)보다 청약 증거금이 더 몰려 화제가 됐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앱 블라인드는 지난 5월 국내외 벤처캐피털로부터 3700만달러(약 423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경력직 스카우팅 서비스를 정식 출시했다. 이번 투자금으로 기존 목표인 2025년 나스닥 상장을 더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구인·구직 업체 관계자는 “최근 신입 공채가 줄고 경력직과 수시 채용이 늘어나는 흐름도 이직 플랫폼 서비스가 성장하는 주요 배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