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가 지난 2분기(4~6월)에 1800조원을 돌파했다. 빚이 불어나는 속도는 1분기보다 더 빨라졌다. 빚더미에 눌려 경제 활력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전세 급등까지 벌어지면서 브레이크 없이 증가하는 상황이 7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가계 부채를 서서히 줄이는 ‘연착륙’ 대책이 필요한 상황인데, 정부는 충격 요법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 대출 중단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강도 높은 가계 대출 조이기에 나선 상황이다. ‘대출 절벽’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실수요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 시장이 충격을 받고 있다.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급증하는 등 이상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이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신규 개설된 마이너스 통장은 4923개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영업일 기준) 2461개씩 늘어난 것으로 금융감독원의 신용대출 한도 축소 지침 등 금융 당국의 본격적인 대출 제한 규제가 나오기 전인 지난 10~13일 평균(1418개)보다 74%나 증가했다.
◇브레이크 없는 가계 대출 증가세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가계대출+카드사용액) 잔액은 1805조9000억원으로 1분기보다 41조2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은 전 분기(36조7000억원)보다 더 확대됐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68조6000억(10.3%) 늘어 증가액이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가율로는 2017년 2분기 이후 최대였다.
가계 대출은 1705조3000억원으로 38조6000억원이 늘면서 1분기(34조7000억원)보다 더 크게 불어났다. 지난 4월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의 연간 가계 대출 증가율 상한(5~6%)을 정하는 등 극약 처방을 내렸지만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4월 말 공모주 청약 관련 자금과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생활 자금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며 “주택매매, 전세자금 수요가 1분기에 비해선 둔화됐지만 여전히 많았다는 점도 원인”이라고 밝혔다.
가계 대출은 전체 업권에서 증가했다. 전 분기 말에 비해 예금은행은 12조4000억원, 저축은행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9조1000억원, 보험·카드 등 기타금융기관은 17조1000억원씩 각각 늘었다. 신용 대출을 포함한 기타 대출이 21조3000억원이나 늘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 급증세는 다소 누그러졌다. 2분기에 17조3000억원 증가해 지난 1분기(20조4000억원)보다 준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전세 거래량이 1분기보다 2만채가량 줄어든 것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출 규제 충격에 부동산 실수요자들 불안감 커져
금융 당국은 주간 단위로 금융권의 대출 증가 현황을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출 축소 압박이 커지자 작년 말 대비 대출 증가율 상한선(6%)을 넘긴 NH농협은행은 지난 19일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단을 선언했고, 3분기 대출 한도를 거의 다 채운 우리은행도 9월 말까지 신규 전세 대출을 받지 않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대출 중단은 시장에 불안과 혼란을 가져왔다. 정부가 지난 22일 “대출 중단 조치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출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지난달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를 계약한 직장인 A씨는 아직 잔금 지급일이 두 달 넘게 남았지만, 23일 한 시중은행을 방문해 주택담보대출 신청을 했다. A씨는 “거래하는 은행은 정상적으로 대출을 해주고 있지만, 주변에서 ‘갑자기 대출 막혀 잔금 못 내면 계약금도 못 건진다’고 얘기를 해 서둘러 신청했다”고 말했다.
청약 기회를 노리는 서민들 피해도 우려된다. 23일부터 청약 신청을 받고 있는 경기 과천시 ‘린파밀리에’ 시행사는 분양 공고를 통해 “금융권의 대출 규제로 인해 중도금 대출이 불투명하다”며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분양자가 자력으로 중도금을 내야 한다”고 안내했다. 결국 공공분양 아파트까지 ‘현금 부자’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