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는 지난달 말 회사 내부망으로 임직원을 위한 무료 재무 컨설팅 프로그램을 신청받았는데 정원(150명)이 2시간 만에 마감됐다.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재테크와 지출 관리 등 컨설팅 받고 싶은 분야를 선택하면 회사가 외부 전문가를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신청 공지글이 올랐을 때부터 평소보다 4배 높은 클릭 수(4000여 회)를 기록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더 뜨거웠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6월부터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10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 2030세대가 신청자의 절반을 넘는다. 하루 평균 3명꼴로 투자 및 자산 관리, 세무 문제 등에 대한 상담을 받고 있다.
주식, 코인 등 투자에 나선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직장인이 크게 늘면서 기업들이 투자나 개인 자산 관리 등을 사내 복지 프로그램으로 도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재무설계 최병문 대표는 “직원들이 재무적으로 안정돼야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리, 회사에서 무료로 투자 포트폴리오 점검해 준다니 꼭 들어봐.”
‘동학 개미’ 열풍 등으로 MZ세대의 재테크 관심이 급증하면서 ’웰스 매니지먼트(WM) 프로그램’을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 노하우,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 전략 등을 전문가에게 상담받고 싶어 하는 MZ세대 직장인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신입 직원은 “모였다 하면 부동산, 주식, 가상 화폐 얘기인데 회사에서 무료로 투자 컨설팅을 해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웰스 매니지먼트’는 금융회사에서 고액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 관리 어드바이스, 일부 기업에서 퇴직을 앞둔 임원급의 은퇴 설계를 돕는 프로그램 등으로 운영하던 것인데 MZ세대가 원하는 사내 복지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도 MZ세대 투자 지원에 관심
기업 입장에서는 주식·코인(가상 화폐)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김 대리’들을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딴생각을 하는 직원의 업무 능률이 좋을 수 없다”며 “특히 일확천금을 노리고 투기성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가정은 물론 회사 생활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사전에 리스크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무 컨설팅 프로그램에는 20~30대 밀레니얼 직장인들의 관심이 특히 높다. 예전에는 재무 상담을 신청했다가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꺼리는 심리가 있었는데,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30 밀레니얼 세대는 소액을 투자하더라도 인터넷이나 재테크 앱, 증권사 보고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부지런하게 정보를 획득한다. 한 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월급만 모아서는 내 집 마련이 쉽지 않다 보니 직원들 근로 의욕이 꺾이고 회사에 대한 불만도 늘어가는 것 같다”며 “회사가 기대만큼 월급을 올려줄 수는 없으니 월급을 잘 불려나가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공기업, 중소기업으로 확산
민간 기업만이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지난해 재무·세무 분야 개인 컨설팅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은 3931명으로 1년 전보다 44% 증가했다. 회사가 10회 상담비를 지원한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 실패로 인한 심리 상담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재무 관련 컨설팅을 받는 직원은 더 많다”고 했다.
중소기업도 ‘개인 투자’에 열심인 직원들을 위한 재무 컨설팅 지원에 적극적이다. 300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복지공단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의 일환으로 전문가 상담(심리, 가족, 재무·부채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데, 올해는 참여 기업이 많아 지난 8월에 예산이 소진됐을 정도다. 한 광고기획사에서는 회사와 신청 직원이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 4주짜리 ‘재테크 스쿨’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