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는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열고 하반기에 300억원대 부동산을 매각하고 2000억원 대출을 받기로 결정했다.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장외발매소가 있던 대전 서구 마사회빌딩을 대전광역시에 매각할 작정이다. 지하 6층~지상 12층의 빌딩으로 시세가 300억원을 넘는다.
‘신의 직장’이라는 소리를 듣던 마사회가 생살을 도려내며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은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다. 코로나 사태로 경마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으면서 주 수입원인 연간 7조원 규모의 마권 판매 수입은 끊겼는데,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2000명 넘게 직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초 경마지원직 5000명을 한꺼번에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켰고, 2000여 명이 계속 근무 중이다.
마사회는 지난해 창립 7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4600억원)를 기록했지만, 출근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아가는 직원이 전체의 3분의 2인 1700명에 달한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마지원직이 대부분인데 경마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아 출근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월급의 60%인 60만~70만원을 받는다.
◇2년째 정규직 신입 공채 0명
경마지원직은 경마장에서 마권 발매, 질서 유지, 관객 안내 업무 등을 맡는다. 경마는 금·토·일 3일간만 열리기 때문에 주 2~3일 일하는 계약직이라 20대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워졌다. 정규직 전환 후 절반 정도는 곧바로 퇴사했다. 단순 업무인 데다, 근무시간도 주 20시간 정도라서다. 나머지 2000여 명은 정규직으로 남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 1080명이던 마사회 정직원은 2018년 3021명으로 늘었다. 지난 2분기 마사회 정직원(2566명)의 66%인 1708명이 경마지원직이다.
작년 초 코로나 사태가 터져 경마가 중단되면서 경마지원직은 업무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지난해 2월부터 과천·부산·제주의 경마장이 전면 휴장에 들어갔다가 그해 6월 잠시 무관객으로 문을 열었지만, 다시 중단됐고 그 뒤로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도 월급의 60%는 지급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신입 사원 채용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마사회는 7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입 공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 취업 준비생은 취업 사이트에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이 결국 누군가가 갈 수 있었던 일자리를 잡아먹은 것 아니냐”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마사회는 수익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온라인 마권 발매 허용’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로또·연금 복권, 스포츠토토는 물론이고, 경륜과 경정도 온라인 발매가 허용되고 있지만, 경마만 금지돼 있다. 경마 중단으로 마사회뿐 아니라 국내 말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어려움도 커지자 정치권에서 온라인 마권 발매 허용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밀리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공기업 정규직화 84%가 자동 전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공기업에서 19만5745명(지난 6월 기준)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런 대규모 정규직화에 따른 부담이 늘면서 공기업 경영은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 공기업 36곳의 당기순이익 합계가 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 공시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2016년 9조원에 달했던 공기업들의 당기순이익은 매년 감소세를 보이다, 지난해에는 결국 적자로 돌아섰다.
정규직 전환의 83.6%인 16만3648명이 별도 절차 없는 단순 ‘전환 채용’이라 특혜 논란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대표적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찾아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포하자, 공사 측은 보안요원 1900여 명을 일시에 정규직으로 전환해 줬다. 취업 준비생들은 “지금까지 입사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한 우리는 뭐냐”며 반발했다.
최근 3년간 8200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철도공사는 “사무 영업 신입 직원 선발 규모가 확연하게 줄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에는 경남교육청이 방과 후 학교 자원봉사자 348명을 시험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기로 하자 교육공무원 준비생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며 반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