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열처리 업체인 삼흥열처리는 겨울을 앞두고 매일매일 전기요금 걱정이다. 열처리는 가열·냉각 공정을 통해 금속 재료의 강도와 성질을 쓰임에 맞게 가공하는 기초적인 뿌리 산업이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가공하는 이 회사가 한 달에 쓰는 전력량은 약 550만kWh(킬로와트시). 이달부터 kWh당 3원씩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생산 비용이 한 달 1650만원이나 늘게 됐다. 11월부터는 계절별 할증제까지 적용돼 전기요금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전망이다. 전력 수요가 많은 겨울철 전력 수요를 억제하겠다며 시간대에 따라 전기요금에 많게는 약 20~30%씩 할증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열처리 산업은 전기요금이 생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나 된다”며 “이번 요금 인상으로 간신히 유지해온 영업이익이 완전히 날아갈 판”이라고 했다.
◇대기업보다 비싼 요금 쓰는 중기, 전기 줄일 여력 없어
이달부터 전기요금이 인상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전기 사용이 많은 열처리·도금·주물 등 뿌리 산업의 중소기업들이 전기요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뿌리 중소기업들의 경우 제조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평균 15%에서 많게는 30%를 웃돈다.
중소기업들은 이번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시기도 최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연초부터 국제 석유·LNG(액화천연가스) 가격 급등에도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다 4분기부터 올렸다. 경남 창원에 있는 한 주물업체 대표는 “원재료인 고철값이 급한 상황에서 전기요금이 한 달 1억원 정도 더 나오는 겨울 직전에 요금이 올랐다”며 “이런 가격 인상 요인을 납품가에 한번에 반영할 수 없어 고스란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대기업보다 중소 기업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이 쓰는 전기요금은 대기업보다 약 17% 정도 비싸다. 고압 전력을 쓰는 대기업은 용량이 큰 전선을 이용할 수 있어 전기를 보내는 송전 비용이 낮다. 반면 중소기업은 고압 전력을 저압으로 낮추기 위해 변압기 같은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송전 비용이 높아지고 전기요금도 그만큼 더 비싸다.
전기요금 인상에도 중소 기업들이 전력 사용을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스마트공장 건립 등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한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8월 중기중앙회 설문에서 ‘전기요금이 오르더라도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어렵다’는 답변이 51%에 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열처리 업종의 매출액에서 전기요금 등 에너지 비용 비중은 10.3%인 반면, 영업이익률은 6%에 그친다. 한 열처리업계 관계자는 “영세 업체들의 경우엔 전기요금 비중이 매출의 50%를 넘는 곳도 많다”며 “대형 업체라고 해도 겨우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게 업계 현실”이라고 말했다.
◇열처리, 도금, 용접, 주물 등 타격 클 듯
중소기업계에선 전기요금 인상이 주 52시간제와 원자재 값 인상에도 겨우겨우 버텨오던 뿌리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끊어 놓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연초부터 고철·구리·니켈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시달렸다. 여기에 지난 7월부터 주 52시간제 대상 기업이 50인 미만 중소기업으로 확대됐다. 이상오 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도금 등 뿌리산업 기업들의 제조 원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 가지가 인건비, 원자재, 전기요금”이라며 “이 모든 것이 올해 들어 한번에 올랐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중소기업 전용 전기요금제 도입 등 중소 뿌리기업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주보원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어려운 중기 상황을 고려해 계절별 할증 요금제 폐지가 절실하다”며 “어렵다면 4개월간의 겨울철 할증 기간을 12~1월 2개월로 줄이는 방안이라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