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59)씨는 최근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 홀 서빙 알바생을 구하지 못해서다. 구인 공고를 몇 차례나 올렸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김씨는 “15년간 식당을 운영하면서 요즘처럼 사람 구하기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했다. 식당, 편의점 등의 구인난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올해 1~8월 구인·구직 건수를 분석한 결과, 구인 건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4.2% 늘었다. 그런데 구직 건수는 12.7%나 줄었다. 일자리가 생겼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니트족’이 대거 늘어난 것이 이유”라고 본다.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 코로나 감염 우려가 여전히 높은 데다, 일하지 않아도 각종 현금성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청년들이 알바 자리를 찾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등 일부 지자체는 청년층에 구직활동 지원금으로 월 50만원씩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보인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각 대륙의 조사 대상 33국 중 24국에서 코로나 이후 청년층(15~24세) 니트족이 늘어났다. 현금성 지원이 많았던 미국의 경우 단기 임시직 구인난이 커져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을 정도라고 ILO는 분석했다.
니트족 증가는 통계로 확인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니트족 수를 추정한 결과, 지난해 기준 국내 니트족은 43만5900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24.2%나 급증했다. 니트족은 15∼29세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미혼이면서 육아·통학·심신장애·취업·진학준비·군입대 대기 등의 상황에 해당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된 사람을 뜻한다. 올 초 다소 감소세를 보이던 니트족은 8월 기준 43만2000명까지 다시 늘었다.
코로나 이후 니트족이 늘어난 원인으로는 ‘코로나 블루(우울증)’와 정부의 현금성 지원 증가가 꼽힌다. 알바천국이 구인난을 겪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해보니 알바생을 구하기 힘든 이유(복수 응답)로 ‘코로나 블루로 인한 구직 의욕 감소’(43.0%), ‘일하지 않고도 받을 수 있는 현금성 지원’(26.9%) 등의 답변이 많았다. 일손이 부족해지자 회원 85만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자영업자 카페 ‘아프니까사장이다’에는 구인난을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의 불만 글이 넘쳐난다. 자영업자들은 “일 안 해도 돈 벌 수 있는데 내가 청년이라고 해도 일 안 하겠다” “고깃집 같은 힘든 곳은 아예 사람 못 구한다”고 했다.
◇”50만원 지원금 받으니 종일 서 있지 않아도 된다”
정부와 지자체 등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구직에 적극적이지 않다. 올 초까지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일했던 김모(26)씨는 최근 일을 그만뒀다. 주중 하루 5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은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데, 최근 서울시로부터 월 50만원의 청년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월 50만원 수당에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더하면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실제 서울시는 올해 청년수당으로만 6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경기도는 24세 청년에게 연 100만원씩 주는 ‘청년기본소득’에 연간 1500억원가량을 쓰고 있다.
◇누구는 코인으로 10억 벌었다는데··· 나는 알바?
코인 광풍, 집값 급등으로 근로 의욕이 꺾인 것도 니트족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5년째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김모(29)씨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대학 동기의 가상 화폐 투자 권유를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그 친구는 억대 자산가가 됐다”고 했다.
실제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0.4%는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답했다.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뉴스로는 부동산 폭등(24.7%)을 가장 많이 꼽았고, 코인 폭등(15.8%)이란 응답도 많았다.
주휴수당 등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자영업자들의 ‘알바 쪼개기’ 탓에 양질의 알바 자리가 적어진 것이 니트족 증가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 30시간 일하는 알바생 1명을 고용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2명을 고용하면 이들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아르바이트는 ‘커리어가 쌓이지 않는 일자리’라는 사회적 인식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금 지원 대신 취업 경험 제공해야”
코로나19가 길어지며 비자발적인 실업이나 취업 준비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니트족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니트족에 취준생과 실업 상태의 청년도 포함시킨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니트족 비중은 18.4%로 OECD 평균(13.4%·2019년)을 크게 상회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청년 세대의 생애 전반에 걸친 소득이 감소하게 되고, 결혼이 늦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부모가 노후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니트족 자녀를 돌보게 되면서 가족 전체의 문제로도 확장된다. 이달 초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니트족 증가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0년 33조원에서 2019년 61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사회경제적 비용이란 니트족 사회보장 부담금 등을 뜻한다. 유진성 한경연 연구위원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 있어서는 현금 위주의 지원 정책보다는 취업 경험이나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니트족(NEET族)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어. 일자리가 없고, 교육이나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상태의 무직자를 뜻한다.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와 다른 개념이다. 실업자는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로 분류되지만, 니트족은 일할 의사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