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0(제로)’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역설적으로 비정규직이 10명 중 4명꼴로 늘어난 이유는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강성 노조와 높은 해고 비용 등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 의무화,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등 이미 기득권이 돼버린 정규직에 대한 보호책을 밀어붙였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집계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는 조사 대상 141국 가운데 97위다. 전체 국가 경쟁력 순위(13위)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유연한 고용과 해고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지를 판단하는 ‘고용·해고 관행’은 102위, 노사 관계가 대립적인지 아니면 협력적인지를 나타내는 ‘노사협력’ 분야 경쟁력은 130위로 각각 집계됐다. 최저임금 등 ‘임금 결정 유연성’ 지표는 84위에 그쳤다. 올해 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은 8720원으로 5년 전(6030원)에 비해 44.6% 올랐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경직적인 노동 정책이 오히려 취약 계층인 비정규직을 늘리는 결과로 나타났다”며 “해고 유연성은 경영 위기 기업의 구조조정을 뜻하는 것인데, 유럽 국가들은 경영상 위기로 구조조정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파산 위기가 닥쳐서야 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기업 입장에선 한번 정규직을 뽑으면 회사가 어려워져도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가급적 정규직 채용을 기피한다. 국내 시중은행 한 임원은 “최근 한국씨티은행 사례처럼 퇴직금을 7억원씩 줘야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어느 회사가 30년씩 정규직을 쓸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1일 보고서에서 노동 개혁에 성공한 나라로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을 제시하며 “이들은 해고 기준을 완화하거나 시간제 고용을 확대하는 등 노동 개혁에 성공했고, 이후 고용률이 올랐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고용률은 66.8%로 독일(78.2%)‧네덜란드(78.2%)‧영국(75.3%) 등 3국 평균(76.8%)에 비해 10%포인트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