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알루미늄 생산 업체는 지난달 말 구매 담당 임원을 중국에 급파했다. 알루미늄 합금에 들어가는 마그네슘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금속의 강도를 높이고 무게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마그네슘은 자동차용 강판과 건축 자재, 전자제품의 필수 재료다. 중국이 전 세계 공급량의 약 90%를 차지하는데, 한국은 전량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 정부가 지난 9월부터 전력난을 이유로 마그네슘 생산량을 통제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올해 초 ㎏당 3050원이던 중국산 마그네슘이 최근 1만2000원까지 뛰었다”며 “중국 정부가 자국 내 물량 부족을 이유로 마그네슘까지 수출 통제를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최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요소뿐 아니라 마그네슘과 희토류, 리튬 등 필수 원자재 수급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런 품목을 포함해 수입품 1만2586개 중 특정 국가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이 3941개(31.3%)다. 수입선이 막힐 경우 대체선 확보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전자·물류·건설 등 다른 산업에 연쇄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 차량용뿐 아니라 비료용 요소도 중국의 수출 통제로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비료 회사인 팜한농은 “현 상태가 계속되면 이달 말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들이 필수 원자재의 수입처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대체 수급처를 확보하는 것이 공급망 관리의 기본인데,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의존도가 너무 커졌다”며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요소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원자재 대란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요소·마그네슘·희토류 등 필수 원자재 수급난에 직면한 것은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희토류를 원료로 하는 영구자석은 86.2%, 수산화리튬은 83.5%를 중국에서 들여온다. 무역협회가 국내 수입품 1만2586개를 분석한 결과, 중국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이 1850개에 달했다. 미국(503개), 일본(438개), 독일(121개), 이탈리아(108개)도 100개가 넘었다.
◇중국 수입 비율 80% 이상 품목 1850개
중국이 생산·수출을 통제할 경우 타격이 우려되는 품목은 요소 외에도 많다.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 들어가는 수산화리튬도 중국산 비율이 85%에 육박한다. 2위인 칠레산 비율은 12.5%에 그친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장기 계약을 맺고 있지만, 비율이 절대적인 탓에 요소처럼 수출을 갑작스레 막으면 배터리 생산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도 나온다. 테르븀, 산화네오디뮴 등 희토류를 원료로 만드는 영구자석도 중국 비율이 86%를 웃돈다. 영구자석은 전기차 모터를 비롯해 TV 등 IT(정보기술) 제품, 미사일 등 첨단 기기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핵심 소재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말 희토류 중에서도 매장량이 적어 ‘황금 자원’으로 불리는 중(重)희토류를 생산하는 기업 3개를 통합했다. 글로벌 공급을 독점해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후 희토류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10월 22일 1㎏당 1403.5달러를 나타냈던 테르븀은 5일 1529달러까지 올랐다.
의료기기에 주로 쓰이는 산화텅스텐도 중국 의존도가 94.7%에 이른다. 강천구 인하대 초빙교수는 “올 상반기 미국이 공급망을 챙겨본 4대 핵심 품목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의약품과 희토류”라며 “희토류는 미국에서는 국방부가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프로판과 부탄의 미국산 비율도 90%를 웃돈다. 일본과 갈등 속에 국산화와 수입국 다변화를 추진한 이른바 수출 규제 3대 품목 중 포토레지스트(회로를 새기는 감광액)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OLED용 강화필름)도 여전히 전체 수입액 중 80%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필수 원자재 수급 점검 절실
청와대는 5일 요소수 수급 문제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면서 요소 생산국과의 외교 협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요소 품귀 현상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요소와 염화칼륨, 질소 비료 등 29개 품목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한 것은 지난달 11일이었다. 우리 정부도 이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화학회사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 모두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조치의 파급효과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들이 합동으로 필수 원자재 수급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분업 형태로 돼 있다”며 “하지만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수익성만 따져서 원자재를 수급해서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등의 필수 원자재 통제에 대응할 수단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배민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본은 글로벌 무역 규범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제조업이 최고 수준에 이른 국가”라며 “일부 핵심 품목에 대해서는 중국이 의존할 정도로 경쟁력이 강해 다른 국가의 수출 통제에 대한 대응력이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