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과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지난 한 주 시장에 공포를 번지게 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회의(지난 25~26일) 직후 제롬 파월 의장이 가장 많이 한 말입니다.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날 회의에서 현재 사실상 ‘제로’(0%)인 기준금리를 조만간 올릴 계획을 논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파월이 지목한 ‘2015년’은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제로로 묶어 두었던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파월은 왜 여러 차례 ‘그때와 다르다’라고 언급했을까요. 정말 다를까요. 그리고 이런 연준의 입장이 투자자인 우리에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하나씩 짚어 보았습니다.
◇지금은 다르다 ①: 폭주하는 인플레이션
연준은 2008년 12월 0~0.25%로 낮췄던 기준금리를 7년 동안 유지했고 2015년 12월부터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12월(2.25~2.5%)까지 줄곧 인상만 했죠. 파월은 당시와 지금이 다르다면서 26일 기자회견 때 무엇이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우선 파월의 발언부터 보겠습니다.
“여러 차례 말했지만 지금의 경제는 (2015년과) 다릅니다. 인플레이션이 높습니다. 고용 시장이 훨씬, 훨씬 더 강합니다.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는 물론 올해도 평년을 상회할 정도로 탄탄합니다.”
7년 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통제 불능의 지경으로 치닫고 있는 인플레이션입니다. 2015년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인플레이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물가 상승률은 대략 전년 대비 2% 수준인데, 2015년 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로 물가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연준은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당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재개되면서 촉발된 인플레이션 우려가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2%’라는 목표치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6월 5%를 넘어 계속 올라가더니 지난해 말엔 7%를 넘어섰습니다. 40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연준의 임무는 안정적 물가와 고용 안정, 딱 둘입니다. 그럼에도 파월의 연준은 반년이 되도록 높은 물가 상승률을 용인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연준이 물가와 기준금리를 연동하는 방식의 변화와 연관됩니다.
연준은 코로나로 경제가 큰 충격에 빠지자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서둘러 올리지 않을게”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연준이 물가를 평가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2015년엔 물가 상승의 위험만 있어도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앞으로는 ‘실제로 소비자물가 평균 상승률이 상당 기간 연준의 목표치를 웃돌 때’에만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연준의 대처가 과해서 인플레이션이 폭주하도록 방치한 것 아닐까요. 파월은 이렇게 변명했네요. “팬데믹 초기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 경제가 멈춰 서고 사람들은 여러 주 동안 집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팬데믹 때의 판단이 옳았는지 지금 가늠하긴 어렵습니다. 수십 년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겠죠.”
◇지금은 다르다 ②: 기운이 너무 센 고용 시장
두 번째 차이는 고용입니다. 2015년과 비교해 지금 미국의 고용 시장은 강하다 못해 (사람 구하기가) 팍팍합니다. 연준은 ‘완전 고용(maximum employment)’의 기준을 공표하지는 않습니다. 참고할 만한 지표는 미 의회예산국이 추정하는 자연 실업률(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로 4.4~4.5%입니다.
2015년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5.0%였습니다. 현재(지난해 12월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3.9%입니다. 훨씬 낮습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 상승률을 잡을 경우 보통 가장 걱정하는 것이 고용이 악화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인데, 지금으로선 그럴 우려가 없다는 뜻입니다. 연준이 자신 있게 (혹은 부담 없이) 기준금리를 쭉쭉 올릴 수 있겠지요. 파월의 말입니다.
“고용 시장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기준금리를 올릴 여유(room)가 꽤 있습니다. 구직자들의 설문을 보면 일자리가 넘쳐난다고 합니다. 구인하는 회사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고요. 아주 강한 고용 시장이어서 우리가 고용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겠다는 강한 예감이 듭니다.”
파월은 이번 회견에서 미 고용 시장이 완전 고용을 넘어,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과열 수준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령층의 조기 은퇴 등이 촉발한 ‘대(大) 사직(great resignation)’ 영향으로 경제활동 인구 자체가 줄어든 가운데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서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파월은 말합니다. ‘기준금리 올려도 실업률 올라갈 걱정이 없다’라는 자신감을 보인 겁니다.
◇지금은 다르다 ③: 높은 경제성장률
기준금리를 올릴 때 발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부작용은 경제성장률에 끼칠 악영향입니다. 파월은 회견에서 ‘경제가 탄탄하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있지만 미국과 글로벌 경제가 회복한다는 방향성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1월 FOMC 직후에 나온 미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보면 파월의 자신감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4분기 경제성장률이 6.9%(연 환산 기준)를 기록해 전문가 전망치(5.5%)를 크게 뛰어넘었습니다. 코로나 델타 변이가 있었던 지난해 3분기(2.3%)보다도 엄청나게 개선됐고요. 미국의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무려 5.7%를 기록했습니다. 37년 만에 최고치로 20년 만에 중국 성장률을 역전했습니다. 2015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3.7%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파월의 자신감=투자자의 공포?
사실 2015년과 지금은 기준금리가 ‘제로’라는 것을 빼면 닮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당시엔 팬데믹은 없었지만 금융 시장이 망가졌었기에 경제를 되살릴 ‘도구’가 지금보다는 약했습니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은 2013년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작하겠다고 말만 꺼냈는데도 세계 증시에 ‘발작’이 일어났지만, 이번엔 테이퍼링을 실제로 단행해도 시장에 큰 반응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가 금융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맷집’이 좀 더 강해진 상태일 수는 있습니다. 덕분에 연준은 테이퍼링을 순식간에(2021년 11월~2022년 3월) 끝내고 이미 양적 긴축(돈 거두기)를 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준금리를 속도감 있게 올려도 문제없으리라는 파월의 자신감은 이번 회견에서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여러 차례 ‘기준 금리를 올릴 여건이 무르익었다’라고 언급할 정도로요. 지난 2년 동안 증시는 초저금리의 힘, 즉 시중에 ‘넘치는 돈’에 힘입어 크게 오른 측면이 크기 때문에 매파(긴축적)로 완전히 돌아선 파월의 기조는 시장에 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탄 배경에도 예상보다 빠르고 강할 것으로 보이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과 관련됩니다.
더 불안한 것은 증시의 하락을 용인하겠다는 듯한 파월의 발언입니다. 파월은 이번 회견 때 최근 (증시 등) 자산시장에 발생한 충격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자산 시장은 기준 금리 결정의 변수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증시가 어느 정도 하락하더라도 경제 전체를 상하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연준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축적된 ‘거품’을 뺄 기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가운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도 불안하게 전개되고 있고요. 파월도 회견에서 코로나의 충격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변수가 여전히 많다. 겸손하면서도 기민하게(humble and nimble)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투자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