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5월에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예고했다. 예고됐던 일이지만, 연준 의장이 이런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시기와 인상 폭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인플레이션 진화가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파월 의장은 2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주최 토론회에서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5월 회의 때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안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5월 3~4일(현지 시각)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연내 세 번의 빅스텝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질문에 “시장은 우리가 보는 대로 접근하고 있다”고 답했다. 세 차례 빅스텝이 있을 수 있다고 한 셈이다. 연말까지 남은 6차례 기준금리 결정 회의에서 세 번의 빅스텝과 세 번의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이 진행된다면 미국 기준금리는 2.25%포인트 급등한다. 현재 0.25~0.5% 수준에서 2.5~2.75% 수준이 된다.
◇파월 “5월 회의 때 빅스텝”
파월 의장이 직접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인플레이션 불길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년 만에 최고치인 8.5%에 달했다. 그는 “물가가 3월에 최고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다”면서 “우리는 진짜로 금리를 올릴 작정이고 중립 금리가 될 때까지 매우 빠르게 인상할 것”이라고 했다. ‘중립 금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도, 위축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로 통상 2~2.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연준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코로나 이후 초저금리의 힘으로 상승해온 증시 등엔 악재다. 파월 발언이 나온 이날 미국 다우평균과 S&P500지수는 각각 1.1%, 1.5%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는 2.1% 내렸다. 한국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22일 각각 0.9%, 0.7% 하락했다.
◇“물가가 안정돼야 경제가 작동한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코로나 이후 초저금리에 익숙해진 시장은 충격을 받게 된다.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국채 등 채권 금리와 대출 금리가 연쇄적으로 오르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경기 회복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연준이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렸을 때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은 10%를 넘어설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파월 의장은 이날 IMF 토론회에서 당시 연준 의장이던 폴 볼커를 언급하면서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기준금리를 높이고)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경제 침체를 각오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일 각오를 하고 있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ECB 부총재 “7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
3월 물가 상승률이 7.4%까지 치솟아 유로존(유로 사용 19국)의 통계가 작성된 1997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한 유럽도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하는 중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년간의 ‘제로(0%) 금리’에서 벗어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루이스 데긴도스 ECB 부총재는 21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오는 6월 통화정책회의 때 나올 경제 전망 수정 시나리오와 데이터를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선 7월 인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말쯤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ECB의 기존 입장에 변화의 조짐이 있는 것이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각각 0.5%포인트 인상했다. 두 나라 모두 22년 만의 빅스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