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수퍼마켓을 하는 김모(69)씨는 얼마 전 오후 3시 40분쯤 현금을 입금하러 은행 지점에 갔다가 허탕을 쳤다. ‘코로나로 영업시간을 한 시간 단축한다’는 안내문엔 오후 3시 30분에 문을 닫는다고 되어 있었다. 김씨는 “지난달 실내 마스크를 제외하곤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전부 완화되고 식당도 영업시간 제한이 풀려 은행도 당연히 예전으로 돌아갔을 줄 알았다”며 “코로나가 은행 지점에서만 빨리 퍼지는 것도 아닐 텐데, 높은 월급 받는 은행원들이 너무 편하게만 일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달 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위해 시행해온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를 완화하면서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이 전부 풀렸지만 은행은 여전히 코로나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영업시간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은행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데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에선 코로나로 줄어든 영업시간을 정상화하지 않고 단축된 시간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은행 노조 “코로나 상관없이 1시간 단축하자”
은행들은 오전 9시~오후 4시였던 지점 영업시간을 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된 지난해 7월 오전 9시 30분~오후 3시 30분으로 한 시간 줄인 후 아직도 원래대로 되돌리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속한 노조인 금융산업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작년 7월 합의한 영업시간 단축은 애초에는 ‘2주 동안’ 시행하되 ‘3단계 이상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 연장한다’는 단서를 달고 시작했다. 원안대로라면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된 4월엔 은행 영업시간도 돌아갔어야 한다.
문제는 지난해 10월 은행 노조가 임금 협상 등을 진행하는 와중에 ‘코로나 방역 지침이 해제된 경우 산별 중앙 교섭을 통해서만 영업시간 단축을 조정할 수 있다’는 문항을 합의서에 추가한 것이다.
은행 노조는 당시 조합원 공지 등을 통해 이 문구가 “코로나와 상관없이 영업시간 1시간 단축이 실질적으로 확정된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줄어든 영업시간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주 4일 근무, 점심시간 동시 사용 논쟁도
한 시중은행 임원은 “식당·주점·노래방까지 영업시간 제한이 풀린 와중에 은행 지점만 한 시간 단축을 고수한다면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터넷 은행 및 핀테크(금융과 첨단 기술의 결합) 회사에 밀려 은행이 생존 걱정을 하는 판에 지점 영업시간을 줄이겠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금융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은행 지점은 5년 전 7101개에서 지난해 말 6094개로 빠르게 사라지는 상황이다.
은행 연봉이 높아 ‘귀족 노조’라 불리는 금융 노조는 이 밖에도 주 4일 근무, 점심시간 동시 사용 등 일반 소비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잇달아 밀어붙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장인을 중심으로 점심시간 동시 사용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노조가 이를 포기하고 근무시간 단축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본지가 입수한 지난해 금융노사 간 합의문에 따르면, 코로나 영업시간 단축 관련 문안은 실제로 ‘중식 시간 동시 사용 관련’ 사안으로 분류돼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영업시간과 관련, 사 측과의 협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이르면 5월 말 이후에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