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 빚 상환 부담이 최근 5년간 17% 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9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 가계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12.7%를 기록했다. 1년에 1억원을 벌면 이 중 12.7%인 1270만원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는 셈이다. BIS가 가계 DSR을 집계하는 17개 국가 중 노르웨이(14.3%), 네덜란드·덴마크(13.7%), 호주(13.3%)에 이어 다섯째로 높고, 캐나다(12.7%)와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는 차주에게 DSR 비율을 40%(비은행은 50%)로 규제하고 있다. BIS가 산출하는 DSR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총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을 나타내기 때문에 개인별 DSR을 적용했을 때보다 수치가 낮아질 수 있다. 대신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계 부채의 부담이 어느 정도 되는지 비교하기 쉽다.
◇대출 원리금 부담 증가 속도, 전 세계 1위
빚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는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한국 DSR은 2016년(10.8%)과 비교하면 5년간 17.6% 늘었다. 같은 기간 DSR 증가율이 10%대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우리나라에 이어 둘째로 증가율이 높은 스웨덴(8%)도 한 자릿수에 그쳤다. 스웨덴과 핀란드(7.2%), 프랑스(4.8%), 일본(1.4%)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5년간 대출 상환 부담이 줄어들었다.
2016년 가계 DSR이 17.1%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던 네덜란드는 2021년 4분기 13.7%로 줄었다. 5년간 20%나 감소했다. 2016년 두 번째로 DSR이 높았던 덴마크도 지난해 4분기 13.7%로 5년간 14.9%가 줄었다. 17개국의 최근 5년간 DSR 증가율은 평균 -3.3%였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절대 규모도 그렇지만 증가 속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금리 인상기 ‘영끌족’을 비롯한 기존 차주들의 빚 상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금리 8% 시대 열리나
국내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통화 긴축 우려로 올 들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상단이 이미 7%를 뛰어넘은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올 연말쯤이면 대출 금리 상단이 8%대에 진입하면서 차주들의 빚 상환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형(혼합형) 금리는 연 4.33~7.14%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최소 1%포인트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출 금리 상단이 8%에 들어서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게 된다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금리가 8%대에 진입하게 된다. 시장에선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연내 최고 2.75%(현재 1.75%)까지 기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며 매달 갚을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소득이 따라오지 못해, 최근 2년 내 무리하게 집을 산 젊은 대출자들의 월 상환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1인 이상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올해 1분기에 538만1557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전인 2020년 1분기(527만3328원)와 비교해 2년 새 2.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지난해 말(3.6~4.978%)과 비교한 주담대 고정형(혼합형) 금리 상단은 6개월여 만에 43%가량 뛰었다.
시중은행에 이어 카드론 등 2금융권 대출 금리도 연쇄적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자영업자 등 중·저신용자가 주로 2금융권을 이용하기에, 취약 차주의 건전성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카드사의 장기카드대출(카드론)에 영향을 끼치는 여신전문금융채(AA+ 3년물) 금리는 연 4.487%로 지난 연말(2.372%) 대비 2.115%포인트 올랐다.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사는 회사채인 여신전문금융채를 통해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데, 조달 비용이 오르면 그만큼 대출 상품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