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연일 은행 대출 이자가 높다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여파로 대출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이른바 ‘영끌 대출자’ 고충이 커진다는 얘기가 나오자 은행에 대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은행을 압박한 데 이어 28일엔 “예·대금리 차로 인한 이익 창출이 있어 문제”라는 발언까지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나왔습니다.
정부·여당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대출 금리가 올라 국민이 괴로우니 돈 많이 버는 은행이 이자를 좀 덜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내세웠던 경제 원칙과는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 자유시장 경제의 주창자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좋아한다고 밝혀 왔습니다. 한덕수 총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자유 시장 경제의 원칙에 어긋나는 가격 통제는 옳지 않다고 했고요.
대출 금리는 돈을 빌리는 사람이 지불하는 일종의 가격입니다. 대출 금리를 손보겠다는 것은 결국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경제학자는 가격 통제에 반대합니다.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너무 커서입니다. 예를 들어 양파 가격이 높다고 양파 가격을 낮추면, 아무도 양파를 재배하지 않아 가격이 더 폭등할 위험이 있습니다. 대출 금리가 높다고 지나치게 은행을 압박하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은 아마 신용도가 좋아 대출 금리가 낮은 고소득자 대출만 늘릴 가능성이 큽니다. 신용도가 낮은 중·저신용자들은 금리가 훨씬 높은 2금융권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마당에 은행 대출 금리를 낮추라는 것도 이상합니다. 대출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에 돈이 더 풀리게 됩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과거의 많은 정권처럼 새 정부도 가격 통제라는 간단해 보이는 해법에 유혹을 느끼는 듯합니다. 기름 값이 오르니 유류세를 낮춰 대응하고, 경제부총리는 대기업의 임금(노동력에 대한 가격) 인상도 자제하라고 요청(28일 기업인 간담회)합니다. 프리드먼은 1966년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법’이라는 연설에서 “임금과 가격 통제는 경제 시스템을 파괴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를 정말 좋아한다면,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