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은 한 개의 명확한 강대국이 지배하지 않고 여러 지역과 국가가 목소리를 내는 다초점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중·일 협력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대화와 공조가 필요합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1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의 ‘세계 경제 전망’ 세션에서 “선진국은 저개발국을, 국가는 저소득층을 집중해 지원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진행된 ‘윤석열 정부, 성장의 해법을 말한다’ 세션에 참석한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심각해지는 인플레이션 해법으로 ‘작은 정부’를 통한 혁신을 제안했다.
그는 “정치가 경제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긴 어렵다”며 “규제를 풀어 혁신의 토대를 만들고 공급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한국은행이 처음으로 ‘빅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한 가운데 이 세션엔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삭스 교수 “인플레 대처, 취약 계층 고려해야”
이날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와 문답 형식으로 의견을 나눈 삭스 교수는 인플레이션 시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이 더 사려 깊은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삭스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연방준비제도 등 중앙은행은 더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겠지만 이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 계층의 고통이 커진다”며 “정부의 재정을 통한 조치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취약 계층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 금리가 급등하면 저개발국이 특히 타격을 입고 자금 유출 등으로 인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위기에 빠진 국가들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 또한 필요하다”고 했다.
배로 교수는 최근 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중앙은행의 실책을 꼽았다. 그는 “인기에 영합한 정치적 압박이 지금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배로 교수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물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는 것”이라며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막대한 재정 풀기를 추진하던 지난해 말 금리를 올리지 못했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배로 교수는 “한국의 인플레이션도 이전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정치가 경제를 억누르지 않도록 작은 정부로 돌아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선진국’ 한국, 편승 성장 시대 지났다
세션 참석자들은 최근의 위기가 인플레이션 하나에 그치지 않는, ‘멀티(복합) 위기’라는 데 동의했다. 미·중 갈등 고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가 촉발한 보호무역주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중이라는 것이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지금 위기가 1997년 외환 위기와 다른 점은 하나의 큰 충격이 아니라 작은 위험들이 합쳐져 퍼펙트스톰(총제적 위기)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로 교수는 “한국 경제는 선진국으로 사실상 진입했으므로 경제 성장의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이제 한국은 선진국의 기술을 빌리는 방법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스스로 더 많은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자생적 혁신을 위해선 “정부의 규제를 줄여 연구·개발에 대해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법인세를 줄여 기업의 자유를 더 보장하는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