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이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파는 김밥, 도시락, 샌드위치 등을 제조하는 업체로부터 판매촉진비 등을 받았다가 과징금을 물게 됐다. ‘자기 상품’인 PB를 팔면서 ‘을’의 지위에 있는 제조사에 근거없이 비용을 부담토록 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서울 시내의 한 GS25 편의점에서 직원이 상품을 비닐봉투에 담고 있다./뉴스1

◇하도급법 위반 사례로는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

공정위는 GS리테일의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43억68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하도급법 위반 사례로는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GS리테일은 2016년 1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PB 상품 제조업체 8곳으로부터 판촉비와 성과장려금, 정보제공료 명목으로 222억여원을 받았다. GS리테일은 GS25에서 파는 김밥, 주먹밥, 도시락, 버거, 샌드위치, 간편식 등 신선식품(FF제품)을 기획·개발해 제품 규격과 원재료, 제조 방법 등을 제조업체에 알려준 뒤 제조를 위탁해왔다.

GS리테일은 매달 음료수 증정 등 판촉 행사를 진행하면서 판촉비 중 126억1200만원을 제조업체에서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제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제안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행사요청서와 비용부담합의서를 제출받고, 판촉비 기여도가 목표에 미달하는 업체들과 거래관계 중단을 시도했다.

또 GS리테일은 매달 제조업체들로부터 성과장려금 명목으로 매입액의 0.5∼1.0%를 받았다. GS리테일이 받은 성과장려금은 모두 68억7800만원이었다. 계약서에는 전년 대비 매입액이 0∼5% 증가하면 성과장려금을 받는 것으로 돼 있지만, 매입액이 오히려 줄었는데도 받은 경우가 112회에 이른다.

공정위는 “통상 성과장려금은 납품업자가 자사 제품 매입을 장려하기 위해 대규모 유통업자에 주는 금전이므로, 대규모 유통업자인 GS리테일이 스스로 판매할 제품 제조만을 위탁한 수급사업자로부터 성과장려금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GS리테일은 2020년 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제조업체 9곳에서 정보제공료 27억3800만원도 받았다. 제품의 성별·시간대별 판매 비중 등 자료에 대한 정보제공료는 매달 최대 4800만원 수준이었다. 공정위는 “수급사업자들은 품목, 규격, 수량을 단순히 GS리테일의 발주서대로 생산해 납품하기에 받은 정보를 활용할 여지가 거의 없는데도 정보제공료를 지급했다”며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GS리테일은 성과장려금 대신 동일한 금액을 받기 위해 정보제공료 형태로 외양만 바꿔 법 위반행위를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PB상품 위탁을 하도급으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

다만 PB상품 제조 위탁을 하도급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논란이 있다. 하도급법이 아니라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할 경우 유통업자인 GS리테일이 납품업체들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은 것은 위법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편의점 본사가 기획·마케팅 등을 총괄하고 공급사는 단순 제조만 한다는 이유로 이를 원·하청 관계로 규정했다. 송상민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브리핑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은 제조 위탁인 경우 적용을 배제하게 돼 있다”며 “이번 사건은 GS리테일이 자신들의 제품인 PB 상품 제조를 업체들에 위탁한 것이기에 경제력의 우위, 지위상의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2년 1월 대규모유통업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유통사 PB는 하도급법의 테두리 안에서 감시받았다. 그러나 이후 유통사와 PB 제조사 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게 맞는지 논란이 일면서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유통·제조 양측이 정당하게 납품 조건을 약정했다면, 유통업체가 제조사로부터 판매 촉진을 위해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는 CJ, 농심 같은 대형 제조사로부터 성과 장려금을 매년 받고 있다.

GS리테일 측은 “협력사와 경영주를 위한 GS리테일의 상생 노력이 결과에 반영되지 않은 점, 유통·가맹사업 특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며 “공정위 의결서를 받은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징금이 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GS25 간편식의 경우 납품사로부터 GS리테일이 받은 돈의 대부분은 편의점주에게 지급된다. 이 때문에 GS리테일이 PB제조사들로부터 받은 금액을 전부 GS리테일 본사의 이익으로 잡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