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TSMC에 반도체 제조를 맡기고 있는 고객사 수는 총 523사였다. TSMC가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고객사 수는 매년 10곳 이상 꾸준하게 늘어가는 추세다. 반면 삼성전자의 고객사 수는 현재 TSMC의 60% 수준에 그친 300여 곳인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엔비디아와 퀄컴 같은 대형 고객사를 TSMC에 뺏기고 있다. 실제로 두 회사에 주문을 넣어본 경험이 있는 고객사 사장들은 “삼성전자가 서비스 방식을 철저하게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고객사 유치전(戰)에서 TSMC를 이기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와 TSMC에서 모두 일해본 경험이 있는 반도체 엔지니어 A씨는 “TSMC는 고객이 성공해서 더 많은 칩을 주문하면 장기적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인드로 사업에 접근한다”고 말했다. TSMC가 소규모 주문을 넣는 스타트업이나 대학 연구실의 주문도 적극적으로 받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A씨는 “TSMC에는 아예 소규모 업체 칩을 수주하는 사업부가 따로 있고, 현장 실무자가 될성부른 고객사라고 판단한다면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주문을 받아준다”며 “반면 톱다운식 의사 결정을 하는 삼성전자는 소규모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허락을 받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큰 고객만 상대하려고 한다”고 했다.

고객을 상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대표 B씨는 “TSMC는 팹리스 회사를 상대로 지사장부터 움직여서 적극 영업을 한다. 반대로 삼성은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제조를 맡기는 국내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차기 제품을 TSMC에 맡길까 고민 중인데, 이걸 삼성이 알면 원래 만들어준다고 받은 물량도 킥아웃(퇴출)당할 수 있어서 눈치를 보고 있다”며 “TSMC가 철저한 ‘을’의 마인드로 영업을 한다면, 삼성전자는 고객사에도 ‘갑’의 위치”라고 했다.

TSMC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IP(설계 자산) 수도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국내 팹리스 대표 C씨는 “TSMC는 IP 구비가 잘되어 있어서 칩 설계 자유도가 엄청 높다”며 “반대로 삼성전자의 경우엔 쓰고 싶은 IP가 없어 고객사가 직접 IP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신뢰도 문제도 있다. C씨는 “TSMC는 삼성과 달리 수율을 정확하게 밝히는 데다, 수십 년 동안 약속한 시간 내에 어떻게든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신뢰가 탄탄하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으려면 파운드리의 기초가 되는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팹리스 업체들의 다양한 IP를 활용해 칩을 양산하는 경험이 쌓여야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 D씨는 “현재 국내 반도체법 핵심은 시설 투자에 대한 25% 세액공제에 있는데, 스타트업들의 IP 확보와 설계 기술 지원에 더 많은 예산을 써야 한다”며 “대만처럼 팹리스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국 파운드리 산업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