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독립’을 외치고 국산화에 나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소부장 제품의 대일(對日) 수입 의존도는 2018년 18.8%(상반기 기준)에서 지난해 15.4%로 하락하며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정부가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일본을 타깃 삼아 소부장 국산화에 박차를 가한 결과다. 하지만 일본이 줄어든 대신, 대중(對中) 의존도는 2012년 24.9%(상반기 기준)에서 지난해 29.6%로 확대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미 글로벌 가치 사슬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데다, 오랜 기술 축적과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소부장을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산화 맹신이 기술 동맹 측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반도체 협의체인 ‘칩4′ 국가 가운데 미국과 일본, 대만은 단단한 반도체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제대로 끼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설계·장비(미국), 소재·장비(일본), 첨단 제조(한국·대만) 분야가 철저한 분업·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삼성·SK하이닉스를 보유한 한국이나 TSMC의 대만 모두 대외 장비 의존도가 70%를 상회한다. 무역협회는 작년 11월 보고서에서 “반도체 장비 시장은 기술 장벽이 높아 신규 기업 진입이 매우 어렵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기술적으로 검증된 업체와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현재의 독과점 구도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한국도 반도체 장비 수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칩4 동맹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도 과도하게 기술 자급자족만 강조하기보다는 동맹 체제를 구축해 반도체 장비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한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각 분야 첨단 기술은 자급자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넘어섰고, 전 세계 기술 산업이 모두 얽혀 일정 부분 역할을 나눠서 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기술 세계에서 독립을 외치는 건 결국 고립을 자처하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