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8년, 평택 7년, 가오슝(대만)·텍사스(미국) 3년, 시안(중국) 2년.”

각각 반도체 공장 부지 선정부터 실제 가동에 들어갈 때까지 걸린 기간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 회자되는 이 말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대만, 미국, 중국 대비 최소 2배에서 많게는 4배의 기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텍사스에 투자했더니… 美 '삼성 고속도로' 선물 -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왼쪽) 대표이사 사장이 올해 1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건축 현장을 방문해 빌 그라벨 텍사스주 윌리엄슨 카운티장으로부터 선물받은 ‘삼성 고속도로’ 표지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1년 부지 선정을 발표한 이곳은, 3년 만인 내년에 4나노 첨단 반도체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페이스북

미국 1위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은 작년 10월 뉴욕에 신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준공 일정은 3년 뒤인 2025년이다. 반면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공장 부지를 선정했지만 수도권 규제 예외 적용, 토지 보상, 용수 인허가 등에 번번이 발목 잡혀 8년 만인 2027년에야 가동이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투자 속도전’이 생명인데 한국은 여전히 너무 안일하다”며 “한국 기업들이 ‘생큐, 바이든’ 하는 경우는 있지만, ‘생큐, 윤 대통령’이란 말은 하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엔 “윤석열 대통령이 앞장서서 ‘반도체 초강대국’을 외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정부·지자체로 내려오면 온도 차가 확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앙 부처나 지자체 모두 한국 공무원들은 아직도 ‘대기업 특혜’라는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본다”며 “’공장 짓게 해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는 식이고 지자체에서도 인허가를 무기로 별의별 요구를 다 해온다”고 했다.

반면 세계 반도체 1위를 노리는 TSMC는 첨단 기술력과 함께 대만 전역에 반도체 공장을 빠른 속도로 확장하는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 공장 건립을 위해 총통부터 각 부처 장관, 지자체장까지 ‘원팀’을 꾸려 토지, 용수, 인재 공급 계획뿐 아니라 TSMC의 애로 사항까지 사전에 파악해 대응할 정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도권 편중이다’ ‘대기업 특혜 아니냐’는 식의 논리가 발목을 잡으면, 몇 년 뒤에는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마저도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