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적자(SK하이닉스), 2조 적자(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1조 적자(LG디스플레이).

증권사가 내놓은 국내 주요 IT 기업의 1분기(1~3월) 실적 전망치다. 국내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1분기 일제히 수조 원대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에 IT업계의 전통적 봄철 비수기까지 맞물리면서 1분기 실적이 가장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인 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모두 상반기 바닥을 찍고, 하반기엔 서서히 회복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주요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

◇보릿고개 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주요 업체들은 상반기 보릿고개를 넘으려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있다. 증권가에선 올해 SK하이닉스는 최대 10조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4조원에 육박하는 영업 적자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업황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에도 흑자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이래, 이 같은 대규모 적자는 처음 겪는 만큼 타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올해 투자를 전년(19조원)보다 5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작년 말부터 사내 골프 금지, 임직원 간 선물 최소화, 이면지 사용 등 소모품 비용 절감, 출장 인원 최소화 등 경비 절감에 돌입한 상태다. 점심시간 소등(消燈)과 실내 온도 1.5도 낮추기도 비용 절감을 위한 고육책이다.

LG디스플레이는 1분기에만 1조원 절감을 목표로 강도 높은 ‘비용 다이어트’에 나섰다. 예상되는 영업 손실을 비용 절감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분기 실적 발표에서 “적극적인 재고 관리 활동과 액정표시장치(LCD) TV 패널 축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패널의 고강도 생산 조정 등 대형 사업 합리화를 통해 1분기에 1조원 정도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는 21일 열리는 정기 주총에 이사 보수 한도를 기존 60억원에서 45억원으로 25% 삭감하는 안건을 올렸다.

◇불황 속 공격 투자… 격차 벌리는 삼성

업황 불황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 1위 삼성과 2위 SK의 투자 계획은 엇갈린다. 삼성전자는 영업 비용을 줄이면서도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이례적으로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을 빌리면서까지 투자 공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경쟁사들이 바라는 반도체 감산(減産) 역시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으며 ‘오래 버티기’ 전략을 구사 중이다.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3일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세계 D램 시장 매출이 32.5% 줄어든 가운데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 ‘빅3′ 업체 중 유일하게 점유율이 4.4%포인트(40.7→45.1%) 늘었다. 감산과 함께 투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 SK하이닉스(28.8→27.7%), 생산과 인력을 10% 줄이기로 한 미국 마이크론(26.4→23%)은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1위 삼성과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이 가장 공격적인 가격 경쟁을 펼친 덕분에 전반적인 수요 부진에도 출하량을 늘릴 수 있었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이 하반기 시장 상황과 경쟁사 움직임을 지켜보며, 유연하게 전략 변화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전반적으로 투자를 줄이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DSCC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디스플레이 설비 투자 규모가 38억달러(약 4조9000억원)로,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투자 규모는 작년(120억달러)의 32% 수준으로, 사실상 신·증설을 거의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하반기에 시장이 살아날 것을 기대하며, 올해는 최소한의 필수 투자 위주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