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알뜰폰 요금제 비교 플랫폼 1위인 ‘고고팩토리’와 손잡고 25개 제휴 요금제(월 4400~5만7200원)를 9일 출시했다. 고물가 시대에 통신비를 절감하기 위해 알뜰폰으로 갈아타는 수요가 늘자 수익성이 있다고 보고 뛰어든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이 제휴 요금제를 쓰면서 하나은행 계좌에서 휴대폰 요금과 카드 값이 빠져나가게 설정하는 등 요건을 충족하면 개통 후 1년간 매월 최대 5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고객은 휴대폰 요금을 아껴 좋고, 하나은행은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 윈윈이 되는 것이다. 지난 1월 알뜰폰 가입자는 1306만명으로 1년 새 248만명이나 증가했다.

은행들이 본업인 돈 장사가 아닌 비금융 서비스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음식 배달 앱이나 농·축산물 구매, 꽃 배달까지 경쟁적으로 영토를 넓혀가는 중이다. ‘플랫폼’이 대세인 디지털 시대에 맞춰 진출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과 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손쉬운 이자 장사를 정면 비판하면서 비금융 사업 경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비금융 ‘부업’에 눈 돌리는 은행들

은행권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수년 전부터 비금융 사업을 모색해왔다. 대표적으로 작년 1월 출시된 신한은행의 배달 중개 플랫폼(앱) ‘땡겨요’는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 1년 만인 지난 1월 가입자 165만명, 참여 가맹점 수 6만여 개를 확보했다. 빅3 배달앱(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 주문 고객에겐 카드·서울사랑상품권과 연계된 할인 혜택을, 소상공인들에겐 앱 광고비나 입점 수수료 없이 업계 최저 수준의 배달 중개 수수료(2%)만 받는 ‘상생(相生)’ 정책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알뜰폰 브랜드 ‘리브엠’을 출시했다. 은행 영업점에서 요금제에 직접 가입할 수 있고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해 알뜰폰 서비스에 대한 인식도 개선했다. 꾸준한 소문 덕에 2019년 말 5000명이었던 가입자는 지난달 40만명을 돌파했다. 기업금융이 강한 우리은행은 협력사와의 구매 시스템(전산)을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중견·중소기업을 위해 디지털 공급망 플랫폼 ‘원비즈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모바일 앱에서 농·축산물 구매와 전국 꽃 배달, 방문 택배 등 생활 밀착형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과 비금융 서비스를 아우르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를 구축하기 위한 은행들의 경쟁이 종목에 관계없이 최고의 파이터를 뽑는 ‘이종 격투기’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익 못지않게 중요한 비금융 데이터

은행이 비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당장의 수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본업인 금융과 비금융 사업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부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알뜰폰 가입자의 통신 데이터나 배달앱 이용 데이터 등이 충분히 쌓이면 대학생, 주부 등 ‘신파일러(금융 이력이 적어 대출받기 힘든 사람)’ 고객의 신용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

또 이런 비금융 서비스의 결제 창구를 자사 은행으로 연계해두면 20~30대 젊은 세대를 은행 신규 고객으로 유치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최근 정치권과 금융 당국의 ‘이자 장사’ 비판도 은행의 ‘부업’ 발굴에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은행의 지나친 이자이익 의존도(최대 90%)를 개선하겠다고 당국이 칼을 빼든 상황이어서 은행마다 비이자 부문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대형 은행 관계자는 “비금융 서비스를 은행 부수업무로 지정받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제휴 형태로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려 하고 있다”며 “금융규제혁신회의가 각종 규제 문턱을 낮춰주면 앞으로 더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