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불안한 주식을 떠나 채권에 투자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채권은 만기에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발행 금리(’쿠폰 금리’라고도 함)와 만기 전에 채권을 매매할 때 적용되는 유통 금리가 있다. 지금처럼 금리가 높으면 발행 금리가 올라가 만기에 받을 이자가 늘어난다. 아울러 채권의 유통 가격(만기 전에 시장에서 사고파는 가격)은 채권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유통 금리가 높아지면 채권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투자 매력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최근에 일반인이 투자하기 쉬운 상장지수펀드(ETF)가 많이 등장한 것도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 중 하나다. 12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국내 채권형 ETF의 설정액은 16조4553억원으로 한 달 만에 1조5158억원, 3개월 만에 5조456억원 늘었다.
채권 ETF를 통해 투자의 길이 열린 건 좋은데, 여러 종류의 ETF 중에 무엇을 어떻게 골라 투자해야 할까. 영단어와 숫자 조합이 섞인 채권 ETF를 ‘해독’하는 법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정리했다.
◇ETF 이름, 투자하는 채권 특징 담아
채권 ETF는 여러 채권에 나누어 분산 투자를 하는 상품이다. 보통은 국채, 회사채 같은 채권의 종류나 채권의 남은 만기 등 특성이 비슷한 채권을 묶어 ETF로 만든다. 채권 ETF 이름은 투자하는 채권의 특성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KOSEF 국고채 10년’처럼, ‘국고채 10년’이라는 이름이 붙은 ETF라면 만기가 10년 정도인 국채를 모아 놓은 ETF라는 뜻이다.(KOSEF는 키움자산운용의 ETF 브랜드다.)
채권 ETF 중엔 KB자산운용의 ‘KBSTAR KIS국고채30년Enhanced’ 등처럼 ‘높인다’는 뜻의 영어 단어 ‘인핸스드(enhanced)’가 붙은 상품이 간혹 있다. 이는 주식의 레버리지 ETF처럼, 채권의 실제 수익률보다 이 ETF의 등락 폭이 더 큰 상품이라는 뜻이다. 금정섭 KB자산운용 ETF 전략본부장은 “만약 100억원짜리 채권이 있다면, 이를 담보로 30억원을 더 빌려 채권을 더 사는 식으로 1.3배 레버리지를 걸어 수익을 더 강화시킨 상품이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적 투자자라면 ‘만기 매칭형’
기존의 채권 ETF엔 만기가 없었다. ETF에 담은 채권을 사고팔아서, 잔여 만기를 채권의 이름에 표시된 만기로 계속 맞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고채 10년’이라고 붙은 ETF가 투자한 채권을 그대로 두면 만기가 다가오면서 ‘남은 만기’가 점점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만기가 10년 정도 남은 채권으로 계속 채권을 바꿔준다.
이런 채권에 투자할 경우 채권 금리가 하락해 가격이 올라갈 때 수익을 올릴 수는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채권은 만기까지 가지고 있으면 중간에 가격이 하락해도 웬만하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채권 특유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보완한 것이 최근 많이 나오는 ‘만기 매칭형 채권 ETF’다. 지난해 11월 출시돼 10종류가 유통되고 있다.
만기 매칭형 채권 ETF는 예금처럼 만기가 있어서 그때까지 ETF를 보유하면 매수 시점에 예상한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큰 ETF를 뜻한다. 만기일이 되면 ETF가 청산되고 돈을 돌려준다. 다만 만기 매칭형 ETF의 경우 채권 유통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추가 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워, 보수적 성향의 투자자들이 선호한다는 것이 금융투자 업계의 설명이다.
만기 매칭형 채권 ETF의 이름 뒤에는 숫자가 붙어있다. 예를 들어 ‘KOEDX 23-12 은행채(AA+이상) 액티브’는 ETF 만기가 2023년 12월인 은행채에 투자하는 ETF란 뜻이다. ETF의 원금과 수익(혹은 손실)을 합쳐 2023년 12월에 돌려준다. 괄호 안에 ‘AA+ 이상’은 채권 등급을 나타낸다. BBB+ 이상을 ‘투자 적격’으로 보지만, 통상 AA- 이상이 가장 많이 거래된다. 상품명 맨 마지막 ‘액티브’는 기초 지수의 성과를 그대로 추종하는 패시브 ETF가 아니라 기초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목표로 하는 상품을 뜻한다.
◇”장기채에 대한 관심 높아져”
채권형 ETF는 담아 둔 채권의 평균 만기에 따라 1년 이내는 단기, 1~10년이면 중기, 10년이 넘으면 장기로 부른다. 30년이 넘어가면 초장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장기채(혹은 초장기채)는 단기채보다 금리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더 크다. 지금 금리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금리가 하락하면 수익이 상대적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금리가 올라갈 경우 손실도 불어난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 마케팅본부장은 “금리 꼭짓점을 아직 모르지만, 지금부터 장기채를 사면 나중에 금리가 내릴 때 계속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는 투자자가 최근 많아졌다”고 했다.
만약 미국 국채 ETF에 관심이 있다면, 환 헤지(환율 변동에 따른 오르내림을 방지하는 것)가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상품명 끝에 ‘(H)’가 붙어 있다면 환 헤지 상품이다. 환율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게 ‘안전벨트’를 맨 상품을 원한다면 환 헤지 상품을, 만약 달러 가치가 오를 것 같아 추가 환 차익까지 노린다면 환 노출형 상품을 고르면 된다.
국내 채권에 직접 투자하면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이 없다. 반면 채권형 ETF에는 15.4% 세금이 부과된다. 또한 미국 등 해외에 상장한 채권형 ETF를 사는 이들도 있는데, 과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해외 상장 ETF는 해외 주식과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에 다른 해외 주식, ETF의 손실·수익을 합친 순수익에서 250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에 대해서 22%를 양도소득세로 낸다. 이러한 직접 투자는 환율 변동에도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