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다’(2020년 맥킨지 조직문화 진단)는 한국은행이 인공지능(AI) 활용에는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도입한 회의록 자동 작성 ‘AI 속기록(transcribe)’ 이 대표적입니다. 한 한은 직원은 “이틀 내내 다양한 섹션이 이어지는 국제 회의를 정리하려면 예전에 사흘 꼬박 매달렸는데, 요샌 하루도 안 걸려 뚝딱 정리한다”고 하더군요. 방대한 기존 데이터를 ‘딥러닝(심층학습)’해서 인도, 멕시코 등 나라별 특색 있는 영어 악센트도 잘 알아듣고, 회의 때 나온 영어 음성을 쉽게 문서화해준다고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한은은 이 같은 인공지능 언어 기술을 활용해 하루 70여 언론사에서 쏟아진 4000여 건의 기사, 연간으로 따지면 100만여 건의 기사 텍스트를 분석하는 연구(뉴스 텍스트를 이용한 경기 예측)도 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경제 지표만 보고 경제 사건을 이해하려는 걸 “‘교회 팸플릿의 인쇄 비용만 보고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지요. 그래서 한은은 경제기사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수천건의 경제 기사 문장에서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단어들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분석해 경기 상황을 지수로 표현하는 식입니다. 경제기사뿐 아니라 매일같이 쏟아지는 숱한 증권사 보고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2019~2022년 증권사 52곳의 애널리스트 1079명이 낸 기업평가 보고서 12만8000건을 분석해서 유용하게 활용했답니다.
절간처럼 조용하고 변화가 없다고 ‘한은사(寺)’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한은이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신입 사원 63명 가운데 IT 계열(컴퓨터공학) 인원이 역대 최다인 9명이나 됩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인하해야 하는 딜레마는 중앙은행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한은이 AI까지 동원해 최선의 답을 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