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한의사 박모(43)씨는 최근 만기가 돌아온 은행 정기 예금을 재예치하는 대신, ‘국고01500-5003′ 채권을 1억원어치 샀다. 2020년 3월 발행된 만기 30년짜리 이 국채는 현재 세후 수익률이 연 3.3%대로 은행 예금 이자와 견줘도 큰 차이가 없다. 6개월마다 이자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박씨가 진짜 기대하는 건 채권 자체 가격 상승이다. 박씨는 “내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금리 인상이 곧 끝난다고들 하는데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이 오르는 것 아니겠느냐”며 “듀레이션(남은 만기)이 긴 채권일수록 금리 하락기에 가격 상승 폭이 크다고 해서 장기채를 샀다”고 했다. 채권 가격이 올라가면 팔아 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챙기겠다는 생각이다.

◇‘큰손’ 된 채권 개미들

작년부터 뚜렷하게 운집하기 시작한 ‘채권 개미’들이 4월 들어 기록적인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세를 보이고 있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개인 투자자들이 장외에서 순매수한 원화 채권이 약 4조원을 기록했다. 월간 순매수 기준 역대 최대다. 자산운용사(약 8조6000억원)나 외국인(8조6500억원)들의 4월 순매수 규모와 비교하면 개인이 무시할 수 없는 채권 거래 주체가 된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원화 채권 보유 잔액은 현재 37조6000억원 규모로, 1년 전 대비 4배 늘었다.

주식시장에서 2차 전지주가 대세라면, 채권 시장에선 장기채가 대세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달 중 개인 투자자 채권 순매수 상위 종목 1위가 30년 만기 국채(국고01500-5003), 2위가 20년 만기 국채(국고01125-3909)였다. 각각 4500억원, 3300억원어치씩 순매수했다. 잔존 만기가 긴 이런 초장기채 외에도 농협·우리금융·신한금융·JB금융 등 금융사의 신종자본증권, 농금채 등도 보유 잔액이 1000억원이 넘는다.

채권은 매수할 때 만기까지 보유하면 받을 수 있는 원금과 이자가 확정된다. 그래서 과거에 개인들은 만기까지 보유해 이자 수익을 얻는 투자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증권사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 등을 통해 손쉽게 매매가 가능해져, 매매 차익을 얻으려고 채권을 사는 개인 투자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관 투자자 같은 큰손들이나 금리에 따라 변하는 채권 가격에 따른 매매 차익을 얻기 위한 트레이딩 거래를 주로 했는데, 트렌드가 바뀐 것이다. 예컨대 한전채 금리가 6% 턱밑인 5.99%까지 올랐던 작년 11월 한전채를 1억원어치 매수한 개인 투자자가 오늘 판다면 불과 5개월 만에 연 8.4%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리는 셈이 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시중은행 정기 예금 금리가 연 2.95%(6개월)에서 연 3.16%(36개월) 범위인 데 비해, 20년 국고채는 연 3.35%, 단기 우량 회사채는 연 4.1~4.7%대에 금리가 형성돼 있어 안정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고려할 때 똑똑한 개인들의 채권 선호세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인 전용 국채’도 나온다

하반기에는 개인들만 투자할 수 있는 ‘개인 투자 전용 국채’도 나온다. 지난달 국회는 국채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공개 시장에서 입찰 방식으로 발행되는 일반 국고채와 별도로 기획재정부가 사전에 공고한 이자율로 발행하는 개인 투자용 국채를 내놓기로 했다. 개인들의 채권 투자가 이제 막 싹트고 있지만, 개인의 국채 보유 비율은 0.1%(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소액 거래가 어려웠던 데다 기관 투자자보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경우가 많아 투자 대안에서 후순위로 밀렸던 탓이다.

곧 나오는 개인 투자 전용 국채를 2024년 말 전에 사서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1인당 매입 금액 최대 2억원(연 최대 1억원)에 대해 발생하는 이자 소득을 14% 세율로 분리과세 혜택을 준다. 10년·20년 장기로 발행되며, 만기까지 갖고 있으면 기본 이자에 30% 가산금리까지 얹어준다. 개인들의 장기 투자를 독려하는 취지다.

10년 만기 국채를 지금 당장 사서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기본금리(연 3.327%)에 가산금리(0.9981%)를 더한 연 4.3251%의 이자를 챙길 수 있다. 1억원을 투자했을 때 세전 만기 상환액은 1억4325만1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