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코스피가 2601.36포인트로 마감하며 거의 1년 만에 2600선을 뚫었다. 최근 1년간 줄곧 하락하기만 했던 서울 아파트 가격은 5월 넷째 주와 다섯째 주 2주 연속으로 직전 주보다 올랐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 화폐 가격도 올 들어 60%씩 뛰었다.
3대(大) 투자처인 주식·부동산·가상 화폐 가격이 일제히 오름세다. 급격한 금리 인상 후폭풍으로 실물경제는 침체 국면에 들어섰는데, 코(코인)·주(주식)·부(부동산) 가격은 ‘걱정의 벽(wall of worry·가격이 더 오르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들)’을 타고 오르며 실물과의 괴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걱정의 벽 타고 오르는 코·주·부
작년 말 대부분의 시장 전문가들이 올해 시장을 전망하면서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에 부진하고 하반기에 회복된다는 뜻)’를 얘기했지만, 전망은 빗나갔다. 코스피는 작년 말보다 16.3% 올랐고, 코스닥은 28%가량 급등했다. 세계 주요국 증시도 비슷한 흐름이다. 미국 S&P500(11.5%), 나스닥(26.5%), 일본 닛케이225(20.8%), 유로STOXX50(14%) 등도 두 자릿수대 상승세를 보이는 ‘상고(上高)’ 형국이다. 위험 자산의 극단에 있는 가상 화폐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이달 2일까지 비트코인은 64%, 이더리움은 58% 급등했다.
지난해 미국 연준을 필두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자 위험자산 가격은 일제히 폭락했었다. 그런데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져 경기가 식어간다는 각종 징후가 뚜렷해질수록 시장 투자자들은 오히려 반겼다. 경기가 고꾸라지기 직전까지 가면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을 멈추고 곧 인하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금리가 곧 내릴 것이라는 기대 속에 금리에 민감한 테크·기술주들이 올해 주가 상승을 주도하는 게 그 방증이다. 올해 S&P500이 10% 이상 올랐지만, 애플·엔비디아·테슬라 등 7개 대형 테크주가 40% 이상 올랐을 뿐 이들을 뺀 나머지 493개 종목 상승률은 1%에 불과하다.
고금리 직격탄을 맞았던 부동산 시장도 꿈틀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서울 아파트 값은 5월 넷째 주 0.03%, 다섯째 주 0.04% 등 2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작년 5월 마지막 주를 기점으로 51주 연속 하락세였던 서울 아파트 값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 우려가 여전하지만, 주택가격(S&P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은 2·3월 두 달 연속 오르면서 바닥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 빠른 투자냐, 헛된 기대냐
일부에선 금리 인하로 경기가 나아질 것까지 멀리 내다보는 발 빠른 투자란 평가도 나오지만, 한편에선 헛된 기대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뜨거운 금융시장과 달리 실물경제는 침체 초입에 서 있기 때문이다. 6개월 뒤 경기 흐름을 내다 보기 위해 재고, 건설 수주액, 수출입 물가, 구인·구직 비율, 소비자 심리 등을 따져 산출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년 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작년 8월부터는 기준점인 100을 밑돌고 있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다는 것은 경기 수축 국면이란 뜻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보복 소비 덕분에 1분기 경기가 일시적인 호조를 보였지만, 현재 우리 경제는 경착륙 시작 국면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하반기에도 고금리가 계속돼 가계 구매력이 약화되면 소비의 경기 침체 방어가 한계를 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각국 중앙은행 수장들은 ‘곧 금리 인상이 끝나고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시장 기대에 찬물을 붓듯 “연내 인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7월 금리를 연거푸 더 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소연 신영증권 투자전략이사는 “올해 상승을 이끈 반도체와 AI(인공지능) 관련주, 국내에선 배터리주 등을 빼면 나머지 종목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거나 상승세가 미미하다”면서 “금리 조기 인하 전망이 사라지는 하반기엔 지금 같은 가격 반등이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