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파크 스티브잡스 극장에서 팀 쿡 애플 CEO가 이날 애플이 출시한 MR(혼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 앞에 서서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내년 초부터 판매되는 이 기기는 가격이 3499달러에 이른다. /AFP 연합뉴스

“원 모어 싱(One more thing·하나 더).”

5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열린 애플의 연례 개발자 회의(WWDC)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이렇게 말하자 현장에 있던 전 세계 개발자, 미디어, 유튜버 등 3000여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원 모어 싱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제품 발표회 막판 가장 중요한 신제품을 소개할 때 썼던 말이다. 쿡 CEO는 곧이어 애플의 첫 MR(혼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공개했다. 애플이 2014년 스마트워치 애플워치를 내놓은 지 9년 만에 공개한 주요 하드웨어 신제품이다. 이 헤드셋 개발을 위해 애플 엔지니어 1000여 명이 7년간 일했다.

쿡 CEO는 “오늘은 컴퓨팅 방식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며 “(컴퓨터인) 맥이 개인용 컴퓨터를,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비전 프로는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경험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성능은 좋은데 가격은 457만원

비전 프로는 스키 고글과 유사한 형태다. 머리에 착용하면 실제 주변 사물과 함께, 비전프로용 앱이 증강현실(AR) 형태로 눈앞에 나타난다. 눈동자와 손, 목소리로 기기를 제어한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면 아이콘이 움직이고, 손가락 2개를 맞대면 선택이 된다. 눈동자 움직임도 추적해 앱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다. 기기에는 애플이 자체 제작한 반도체 칩 M2와 특별히 개발한 R1 칩이 탑재됐다. R1 칩은 헤드셋에 달린 카메라 12개와 센서 5개, 마이크 6개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 사용자 눈앞에 새로운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구현한다. 특히 비전 프로는 기기 외부 디스플레이에 사용자의 눈이 비치는 ‘아이사이트(Eye Sight)’ 기능을 탑재했다.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면 기기 고글 부분이 투명하게 변하며 사용자의 눈을 볼 수 있다. 애플은 “사용자가 주변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비전 프로는 다른 애플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와 연동된다. 노트북인 애플 맥북 화면을 비전 프로 내로 불러올 수 있고, 애플의 아이클라우드 사진 보관함에 접속해 사진과 영상을 실물 크기로 볼 수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개발하며 5000개 이상 특허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애플은 이날 또 전용 콘텐츠 공급을 위해 디즈니와의 협업도 발표했다.

문제는 가격과 배터리 용량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내년 초 미국에서 3499달러(약 457만원)에 판매할 계획이다. 최근 메타가 출시한 VR 기기 퀘스트3가 499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고가다. 애플이 향후 보급형 모델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출시 시기와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다. 비전 프로는 또 유선으로 이어진 배터리로 구동되는데 배터리 지속 시간이 2시간에 불과하다.

◇죽었던 메타버스 부활할까

관건은 애플 비전 프로가 메타버스를 되살릴 수 있을지다. 작년까지만 해도 뜨거웠던 메타버스는 올 들어 인공지능(AI)으로 관심이 몰리며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올 1~5월 전 세계 메타버스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6억6400만달러(약 870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29억3000만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단 테크 업계와 월가에선 애플 비전 프로가 메타버스를 즉시 부활시키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전 프로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애플 주가는 비전 프로 공개 후 시간외거래에서 2% 넘게 하락했다. 애플도 비전 프로가 바로 흥행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이 헤드셋의 판매량을 첫해 90만대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애플의 참전은 MR 헤드셋 시장에 ‘메기 효과’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높은 브랜드 가치와 충성 고객층을 지닌 애플이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가상현실 기기 시장이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메타는 이전 제품보다 40% 정도 얇고 해상도와 디스플레이를 개선한 최신 VR 헤드셋 ‘퀘스트3′를 공개했고, 삼성전자는 올 1월 구글·퀄컴과 XR(확장현실) 동맹을 맺고 XR 기기를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