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증시가 블랙홀처럼 글로벌 투자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1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에만 외국인 자금 136억달러(약 17조5500억원)가 몰렸다. 미·중 갈등 와중에 벌어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 인도가 ‘포스트 차이나’로 급부상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인도 증시에 주목하고 있다. 12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3개월(지난 10일 기준) 사이 국내 인도 주식형 펀드(27개)에 투자금 2730억원이 순유입됐다. 이 기간 19개 국가·권역별로 분류한 해외 펀드 가운데 투자금이 늘어난 곳은 중국, 인도, 베트남, 유럽 펀드뿐인데 이 중 인도 펀드가 압도적인 수익을 냈다. 3개월간 수익률 10.54%를 기록해 중국 펀드(-10.38%), 유럽 펀드(-1.86%), 베트남 펀드(+3.42%)를 제쳤다.

그래픽=김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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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던 코끼리’ 인도, 훨훨 날다

최근 인도 증시는 고공 행진하고 있다. 인도 증시를 대표하는 센섹스(SENSEX) 지수는 지난달 21일 6만3523.15로 역대 최고를 찍더니 이달까지 4번이나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인도거래소에 상장된 우량주 50종목으로 구성된 니프티(NIFTY)50 지수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 6일 사상 최고가(1만9497.30)를 기록했다.

앞서 인도 증시는 올해 초 아다니그룹의 주가 조작·분식 회계 의혹이 제기된 후 한때 조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4월 이후 본격적인 상승세를 탔다.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으로 인도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과 우수한 인재 풀, 친기업 환경 및 IT(정보 기술) 스타트업 성장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 등에서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생산 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탈(脫)중국에 나선 삼성전자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서둘러 인도 내 생산 비율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사격했다.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미국을 방문하며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그 결과 1년 전보다 센섹스 지수는 21.77%, 니프티50 지수는 21.06%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이 16.25%, 코스피가 10.63% 상승한 것보다 훨씬 양호한 성적을 냈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으로 부진할 때에도 인도 증시는 연간으로 4%대 상승하는 저력을 보였다. 지난달 인도 주식의 시가총액은 3조5000억달러를 넘어서며 미국, 중국, 일본, 홍콩에 이은 세계 5위 자리에 올라섰다.

◇국내서 인도 ETF 잇따라 출시

인도를 향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자 금융사들은 관련 상품 라인업을 확충하고 있다. 지난 4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도 니프티50 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 상품을 나란히 상장했다. 출시 이후 두 달여 만에 두 상품에 1851억원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수익률도 양호하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인도니프티50 ETF’는 최근 한 달간 5.39%의 수익을, 미래에셋의 ‘TIGER인도니프티50 ETF’는 4.98%의 수익을 거뒀다. 2014년 상장돼 순자산이 국내 최대(1907억원)인 키움자산운용의 ‘KOSEF니프티50 ETF’는 최근 1년 수익률이 12.94%이다.

국내엔 니프티50 지수를 추종하는 ETF만 있는 반면, 미국에 상장된 인도 ETF는 더 다양하다. 인도 금융주를 많이 담고 있는 ‘아이셰어즈 MSCI 인디아 ETF’나 인도 중소형주만 편입한 MSCI 지수를 추종하는 ‘아이셰어즈 MSCI 인디아 스몰-캡 ETF’ 등 선택 폭이 넓다.

다만 인도 증시가 랠리를 거듭하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높은 상태라는 게 투자자들에겐 부담이다. 국내 인도 ETF 상품의 경우 환율 움직임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는 환헤지(hedge·위험 회피)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최근엔 올해 4년 만에 나타난 엘니뇨(동태평양 감시구역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상승) 현상이 인도 증시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우창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농업 비율이 큰 인도는 2000년 이후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마다 농작물 작황 부진과 물가 상승 등에 대한 우려로 증시가 평균 9% 하락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