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는 ‘기재부 패싱(건너뛰기)’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기획재정부가 위축됐는데, 격세지감이네요.”
기재부 출신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22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로 지명받고,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이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되자 세종시에 있는 중앙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기재부 전성시대’란 말이 돌았다. 기재부 출신이 요직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이 기재부 출신이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차관, 관세·조달·통계청장, 금융통화위원 등 차관급까지 따지면 더 많다. 국조실장에는 박구연 국조1차장이 마지막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막판 뒤집기’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를 제외한 부처에서는 “또 기재부냐”는 반응이다. ‘기재 강점기’라는 말도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빗대 기재부 출신이 타 부처까지 진출, 점령하는 일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개각 때 농식품부와 해수부 차관에 기재부 출신을 앉히고, 기재부 산하 4대 외청 중 국세청을 제외한 3곳(관세·조달·통계청) 수장을 기재부 출신으로 채우자 이런 말이 많이 나왔다.
반면 기재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본다. 한 기재부 국장급 간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꽉 막혀 있던 것이 이제야 정상화된 것”이라고 했다. 문 정부 이전까지 역대 정부는 좌파든 우파든 관계없이 엘리트 경제 관료인 기재부 출신들을 다른 부처 장관으로 발탁해 썼다. 산자부와 농식품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같은 경제 부처는 물론이고,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교육부·고용노동부 같은 사회 부처 장관에도 기재부 차관이나 1급 출신이 여럿 임명됐다. 노무현 정부 때도 산자부와 보건복지부, 교육부, 농림부 장관 등에 기재부 출신이 기용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는 ‘찬밥’ 신세가 됐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반대하던 정책이 청와대와 여당 주도로 실행되면서 ‘홍두사미(홍남기 부총리와 용두사미의 합성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기재부 차관이 다른 부처 장관으로 영전하는 관행도 끊겼다.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관세청장, 통계청장처럼 기재부 몫으로 여겼던 자리도 교수나 대선 캠프 출신 등 어공(어쩌다 공무원)에게 돌아갔다. 전직 기재부 고위 관료는 “문재인 정부는 경제 관료보다는 정치인이나 교수 등 외부인에게 자리를 주고 공무원을 감시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기재부 출신의 약진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모든 부처의 정책을 조율해본 경험이 있고 경제 전반의 거시적 그림을 볼 수 있는 기재부 출신이 쓰임새가 많은 것”이라며 “대통령이 기재부에 믿고 맡기는 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