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알뜰폰 이용자는 2018년 798만명에서 올 7월 1469만명으로 5년 사이 84%나 늘어났다. 그사이 중소 알뜰폰 업체들의 가입자는 약 10% 줄어들었다.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른바 ‘대기업 알뜰폰’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 기간 수백억원대 적자를 봤다. 대기업 알뜰폰이 시장에 치고 들어오면서 전체 시장이 커졌는데도 이 같은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왜일까. 대기업 알뜰폰들이 가입자를 유치하려고 마진을 최소화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를 두고 알뜰폰 업계에선 “모기업의 자본력을 앞세워 중소업자들이 설 자리를 없애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9일 국회 과방위 소속 윤영찬 의원실(민주당)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알뜰폰 자회사(5사)와 국민은행의 KB리브엠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2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비록 적자를 냈지만, 대기업 알뜰폰의 시장 점유율(순수 휴대폰 가입자 기준)은 2018년 36%에서 올 8월 52%까지 늘어났다. 전체 알뜰폰 사업자 80여 개 중 대기업 알뜰폰 6사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적자가 클수록 가입자도 늘어나는 알뜰폰 시장
실제로 알뜰폰 업체별 가입자 수 변화를 살펴보면, 최근 5년간 누적 적자가 100억원 넘는 업체들이 가입자 수도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위 업체인 KT엠모바일(KT 자회사)은 2018년(72만명)부터 지난해 말(127만명)까지 55만명을 더 모집하는 동안 108억원의 적자를 냈다. 같은 기간 가입자 수가 50만명 늘어난 미디어로그(LG유플러스)는 386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후발 주자’들의 사업 기간 대비 적자는 더 컸다. 2019년 규제샌드박스로 지정돼 알뜰폰 사업을 시작한 KB리브엠(국민은행)은 3년여간 492억원을, 2020년 시작한 KT스카이라이프(KT)는 2년간 33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년 150억원 규모의 적자를 내온 셈이다.
반면, 이와 같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중소 알뜰폰업체들은 점점 순위에서 밀려났다. 가입자 수 기준 상위 10개 사업자를 보면, 대기업 알뜰폰과 중소 알뜰폰의 비율은 2018년 ‘4대6′에서 올해 ‘6대4′로 역전됐다. 2018년 당시 점유율 2위였던 아이즈비전(73만명)과 4위였던 유니컴즈(68만명)는 각각 지난달 기준 13위(20만명), 5위(46만명)로 밀려났다. 순위가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전체 가입자 수 자체도 많게는 70%가량 감소한 셈이다.
◇”대기업의 사다리 걷어차기”
통신업계에서는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 알뜰폰들은 24시간 고객센터, 영화관·카페 등 각종 브랜드와의 제휴 혜택을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적자를 전제로 한 저렴한 요금제로 가격에 민감한 알뜰폰 고객을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한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중소업체들이 3만원짜리 요금제를 3만5000원에 팔 때, 대기업 자회사들은 거의 원가 그대로 팔고 있다”며 “직원 월급, 마케팅 비용 등은 아예 고려하지 않고 당연한듯 적자를 내는 건 결국 통신사들이 알뜰폰 시장까지 차지하기 위한 도구로 자회사를 앞세우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앞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 경실련 등 각종 단체들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에 대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중소업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지난 6월 ‘통신시장경쟁촉진방안’을 발표하며, 대기업 알뜰폰의 점유율 규제를 강화하고, 설비 투자를 한 알뜰폰 업체에 큰 폭의 데이터 할인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 중심의 알뜰폰 시장을 개편하고, 이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제4의 사업자를 육성할 계획”이라며 “궁극적으로 알뜰폰 시장 내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들이 다양한 요금제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