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0일(이하 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유지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그러나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다, 내년 말 금리 전망을 5.1%로 종전보다 0.5%포인트 높게 예상하면서, 시장에 새로운 먹구름을 드리웠다.
금리 인상이 거의 끝났는지는 몰라도, 지금과 같은 연 5%대 고금리를 생각보다 오래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연준의 최신 전망에 세계 금융시장은 일제히 얼어붙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1.5% 하락했고, 21일 아시아에서도 한국(코스피 -1.75%, 코스닥 -2.5%), 일본(닛케이평균 -1.37%) 증시 등이 동반 약세를 보였다. 채권 가격도 17년 만에 최저(채권 금리 상승)를 기록하는 등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자산 가격이 일제히 고꾸라졌다.
◇성장률 높이니 금리 전망도 높아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 목표를 2%로 유지할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해 정책 목표 수준으로 안정화됐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적인 통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연준은 이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실업률 전망치 등을 담은 ‘경제전망요약’ 보고서도 냈다.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은 석 달 전에 예상했던 1.0%에서 2.1%로 두 배 넘게 상향 조정됐다. 내년 성장률 눈높이도 1.1%에서 1.5%로 높아졌다. 반대로 실업률 전망은 4.1%에서 3.8%로 낮췄고,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상승률 전망은 3.2%에서 3.3%로 올렸다. 실업률이 역사적 저점을 기록할 만큼 고용시장이 탄탄하고, 물가는 목표보다 높은 3%대에 머무는 등 경제가 뜨거운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향후 금리 전망을 나타내는 ‘점 도표(dot plot)’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점 도표는 19명의 연준 위원들이 개인적으로 매년 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금리 수준이 얼마인지를 찍은 것이다. 실제 결정되는 기준금리와 꼭 맞지는 않지만 연준의 기류를 읽을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날 점 도표에 따르면 올 연말 금리 전망은 5.6%로 유지됐다. 19명 중 무려 12명이 지금보다 한 차례 인상을 찍은 셈이다. 문제는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이 종전 4.6%에서 5.1%로 0.5%포인트 높아진 데다 2025년 전망도 기존 3.4%에서 3.9%로 올라갔다는 점이다. 모건스탠리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번 점 도표로 연준이 금리를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유지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점 도표를 따른다면 연준은 오는 11월 FOMC에서 한 번 더 금리를 올린 뒤 내년에 두 번 정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이날 FOMC 결과 발표 직전 한 행사에서 “4개월 또는 6개월 뒤에도 인플레이션은 4%에 달할 것”이라며 “(연준이) 금리를 지금보다 인상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자산시장 일대 혼란… 달러 뺀 나머지 일제히 ‘휘청’
연준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전망으로 작년 말부터 시장을 희망 고문했던 피벗(pivot·금리 방향 전환)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대신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당장 미국 채권 2년물 금리가 연 5.19%, 10년물 금리가 연 4.4% 수준까지 오르는 등 각각 2006년과 2007년 이후 최고를 경신했다. 달러 가치는 연중 최고 수준에 도달해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전날보다 9.6원 오른 달러당 1339.7원에 마감했다.
미국이 금리를 늦게 내리는 건 다른 대부분 나라에 부담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경기 침체 우려가 큰 우리나라에는 특히 그렇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벌어지는 금리 차에 따른 우려 등 때문에 우리가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리기는 어려울 텐데, 미국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자영업자와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져 우려스럽다”면서 “경기 경착륙을 막을 다각도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